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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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군부의 정치인 체포 계획: 김대중씨 북괴 음모 경고 기자회견 뉴스 링크 수정 및 뉴스인용 틀 적용
→‎외국의 김대중 구명운동: 요한 바오로 2세 구명 운동 링크를 뉴스인용 틀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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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사민당]]의 1980년 9월 17일자 보도자료에 따르면 [[빌리 브란트]] 당시 사민당 총재는 “김대중씨에 대한 사형 선고는 우리 모두에게 큰 도전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며 “조국의 사회적 발전과 인권수호를 위해 헌신한 애국자의 노력이 이런 판결로 귀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이번 판결이 집행된다면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막대한 손상을 입으므로 대통령이 판결이 수정되도록 조치할 것을 긴급히 요청한다”며 “김대중씨 구명에 모든 힘을 발휘해 줄 것을 미국 정부에도 긴급히 요청한다”고 말했다.<ref>[http://www.segye.com/Articles/News/Politics/Article.asp?aid=20090520004101&subctg1=&subctg2= "브란트 前 獨 총리 DJ 구명운동했다"]</ref>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은 서울 주재 로마 교황청 대사관을 통해 전두환에게 두 차례 편지를 발송해 김대중의 선처를 당부했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5191754145&code=100203 경향닷컴 | Kyunghyang.com<!-- 봇이 따온 제목 -->]</ref>{{뉴스 인용
| 제목 = 죽음 앞둔 DJ 구한 ‘교황의 자비’
| 저자 = 배명재
| url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5191754145&code=100203
| 출판사 = 경향신문
| 쪽 =
| 날짜 = 2009-05-19
| 확인날짜 =
| 인용문 = 교황은 1980년 12월11일 서울 주재 교황청 대사관을 통해 전 전 대통령에게 1차 편지를 발송해 김 전 대통령의 선처를 당부했다. 김 전 대통령의 형량이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직후인 이듬해 2월14일 2차 편지를 보내 전 대통령에게 감사의 뜻을 전달했다.
}}</ref>
 
이후에도 계속하여 [[미국]]을 비롯한 해외 지식인들의 강한 항의가 제기되고 급기야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우회적인 압력이 들어오자 김대중 문제가 미국과의 외교 마찰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 [[노신영]] 당시 안기부장은 [[전두환]] 당시 대통령에게 김대중의 석방을 건의했다. 이를 두고 고심하던 전두환은 [[1982년]] [[광복절]] 특사 명단에 김대중을 포함시킬 예정이었지만 군 내부의 반발로 무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