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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말년에는 궁을 새로 짓고 사치로운 생활을 하는 등 민심에 어긋나는 행위를 많이 하였는데 [[235년]] 허도에 큰 공사를 일으켜 궁전을 짓고 [[낙양]]에도 조양전과 태극전을 짓고 총장관을 쌓았는데 그 높이가 10길에 달했고 숭화전과 청소각, 봉황루 등을 세우고 구룡지를 만들어 박사 [[마균]]에게 총감독을 맡겼다.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궁전의 대들보와 기둥을 화려하게 조각하고 푸른 기와와 금빛 벽돌을 사용하며 이름난 명장 3만 명이 동원되고 백성 30만 명이 부역으로 끌려와 일했다. 이에 사도 [[동심]]이 표문을 올리지만 거절당하고 곧 태자사인 [[장무 (위) |장무]]가 표문을 올리지만 조예의 분노로 처형당하며 소부 [[양부]]의 표문도 거절당한다.
 
한편으로는 어머니 견부인을 문소황후(文昭皇后)로 추존하고 그녀를 모함하여 죽게 만든 [[문덕황후 (조위)|문덕황후]]를 사사한 후 목을 베어 효수하기도 하였다. [[239년]]에 조예는 35세의 나이에 요절하였는데 그의 사후, 어린 양자인 제왕(齊王) [[조방]](曹芳)이 황위를 계승하였고, 이때 조씨 일파가 사마씨에게 패하고 말았다. 실권은 사마씨가 장악하게 되고, [[서진]](晉)왕조의 성립을 초래하게 된다.
|임기= [[226년]] - [[239년]]
}}
{{틀:삼국지 중요 등장 인물}}
 
{{삼국 시대 (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