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열차분야지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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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는 원형(圓形)의 중심에 북극이 있고, 그 북극을 중심으로 하여 관측지의 북극의 고도에 따른 작은 원과 더 큰 적도 및 황도권이 그려져 있다. 원의 주위에는 28수(宿)의 명칭과 적도수도(赤度宿度)가 기록되어 있고, 각 수(宿)의 거성(距星)과 북극을 연결하는 선에 의하여 개개의 별의 입수도(入宿度)가 눈으로도 매우 정밀하게 읽어갈 수 있게 그려져 있다. 관측의 글에는 28수(宿) 거극분도(去極分度), 24절기의 동틀 무렵과 저물 무렵에 자오선을 지나는 별에 대한 글, 12국 분야(分野) 및 성수분도(星宿分度), 해와 달에 대한 글, 논천설(論天說), 천문도 작성 경과, 작성자들의 관직과 성명에 이르기까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때에 새로운 성도의 작성을 시도하지 않고 4세기나 6세기경에 관측된 고구려 성도의 [[세차운동|세차]](歲差)에 의한 남중하는 별(中星)의 오차만을 새로 관측하여 교정한 것은 그것이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별을 망라한 것이어서 성좌의 새로운 관측에 큰 의의를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ref>{{글로벌2|제목=조선 전기의 과학기술}}</ref>
 
== 형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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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열차분야지도의 별그림으로부터 추정한 관측위도와 평양의 지명으로부터 미루어 볼 때, 천문도는 평양이 그 도읍지였던 [[고구려]]에 그 원본이 보관되고 있었다고 추측된다.
 
거극도와 각도 및 별들의 분포와 세차운동으로 인한 위치의 변화로 그 측정연대를 참조하면, 대략 삼국시대 초기인 기원 전·후가 된다. <ref>박창범, '천상열차분야지도의 별그림 분석', 한국 과학사학회지 제18권, 제2호, 1998년</ref>
기록상으로 1464개의 별이 그려진 천문도를 중국에서 처음 만들었다는 [[3세기]]에서 2백 년가량 앞서는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