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버 왕국: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역사' 단락 신설
→‎역사: 나머지 내용 추가
50번째 줄:
 
새로 재건된 하노버 왕국은 선제후령이었던 시기에 비해 영토가 크게 확장되었다. 그 결과 하노버 왕국은 [[독일 연방]] 가맹국 중 4번째로 넓은 영역을 차지하게 되었으며, 북독일 지역에서만 비교하면 [[프로이센 왕국]]에 이어 두 번째로 넓었다.
 
[[조지 4세]]와 [[윌리엄 4세]]의 통치기간인 [[1816년]]부터 [[1837년]]에는, 그들의 동생인 케임브리지 공작 [[아돌퍼스]] 공이 하노버에서 영국 국왕을 대신하여 [[부왕]]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1837년]] 영국에서 [[빅토리아 (영국)|빅토리아 여왕]]이 즉위하자, 123년에 걸친 하노버 왕국과 영국의 [[동군연합]]은 끝나게 되었다. 당시 하노버 왕국은 [[살리카 법|준 살리카 법]]을 왕위 계승 원칙으로 정하고 있었는데, 이 법에 따르면 남성 왕위계승권자가 한 명이라도 존재하는 경우에는 여성 왕위계승권자는 왕위를 상속받을 수 없었다. 이 때문에 빅토리아는 하노버 왕국의 국왕으로 즉위하지 못하였고, 빅토리아 대신 빅토리아의 숙부인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1세|에른스트 아우구스트]]가 즉위하였다. 에른스트 아우구스트는 [[조지 4세]]와 [[윌리엄 4세]]의 동생으로서, [[조지 3세]]의 당시까지 생존한 아들들 중 가장 연장자였다. 아우구스트보다 동생이었던 아돌퍼스는 하노버 국왕이 되지 못하고 영국으로 돌아간다.
 
[[1866년]] 독일 통일의 주도권을 놓고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이 발발하자, 하노버 왕국은 처음에 다른 [[독일 연방]] 가맹 소국들과 함께 중립을 지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같은 해 [[6월 14일]] 하노버는 프로이센에 대항하여 독일 연방군을 움직이는 것에 찬성표를 던지게 되었고, 이는 프로이센 왕국이 하노버 왕국에 전쟁을 선포하는 빌미가 되었다. 전쟁의 결과 하노버 왕국은 프로이센에 병합되어 왕국의 지위를 잃어버리고 프로이센 왕국의 일부로 전락한다. 이는 하노버 왕국의 멸망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노버 왕국은 [[하노버 주|프로이센의 하노버 주]]로 편입되어 프로이센 [[호엔촐레른 왕가]]의 지배를 받게 된다. [[1871년]] 프로이센이 [[독일 제국]]을 수립함에 따라 하노버 왕국의 옛 영토도 독일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 정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