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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기> 1870년대부터는 칸트 철학의 연구가 본격화되어 [[헤르만 코헨|코헨]]의 <칸트 경험의 이론>(1871)이 나오고, [[빈델반트]]가 <역사와 자연과학>(1874) 속에서 개성기술적 방법과 법칙정립적 방법을 분류하여 새로운 방법으로 제시하였다. 그 밖에 문헌학(文獻學)적인 칸트 연구가 1880년에 융성하여 [[아르놀]], [[파이힝거]] 등의 활약이 있었다.
 
<제3기> 그러나 신칸트학파의 독자적인 철학체계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역시 1890년대 이후였다. [[마르부르크 학파]](혹은 마부르크 학파)]]에서는 [[코헨]]·[[나토르프]]·[[카시러]], 서남(독일) 학파에서는 [[빈델반트]]·[[리케르트]]·[[라스크]] 등이 칸트 철학의 입장에서 자기의 철학체계를 구성해 내놓았고, 1896년에는 잡지 <칸트 연구>도 창간되었으며, 이 때부터 개별과학에도 영향을 미치고, 독일 이외의 영국·프랑스·이탈리아 등에도 파급되었다.
 
[[법철학]]에서는 [[루돌프 슈탐러]]가 마르부르크 학파의 생각을 순수법학에 응용하였고, [[교육학]]에서는 [[나토르프]]가 [[헤르바르트]]주의에 대해 사회교육학을 설했으며, [[신학]]에서는 [[알브레히트 리츨]]이 종교를 가치판단의 총괄로 보았고, [[트뢸치]]도 신학에서 리츨의 제자로 서남독일학파 계통이다. [[막스 베버|베버]]도 리케르트와 관계가 있고 사회문제에서는 [[베른슈타인]]·[[슈타우딩거]]·[[아들러카를 포를렌더]] 등에게 영향을 주었다. [[코헨]] 자신도 윤리적 사회주의를 부르짖었고, [[나토르프]]는 이를 사회이상주의로 전개시켰다. 프랑스에서는 [[샤를 르누비에]]·[[필롱]]·[[라슐리에]], 영국에서는 [[에드워드 케어드]]·[[토머스 힐 그린]], 이탈리아에서는 [[카를로 칸토니]] 등이 신칸트 학파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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