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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각지'''(妙覺地){{.cw}}'''묘각해지'''(妙覺海地){{.cw}}'''묘과'''(妙果){{sfn|축불념 한역|T.1485|loc=하권 〈7. 대중수학품(大衆受學品)〉. 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24n1485_p1021c21 T24n1485_p1021c21 - T24n1485_p1022a15]. 5주지번뇌(五住地煩惱)|quote=<br>"從十信乃至十向。自然流入平等道。無得一相真實觀。一照相入初地道。佛子。復從是地正觀一照智中。入百萬阿僧祇功德門。於一相觀中一時行。乃至第十地。心心寂滅自然流入無垢地。佛子。復從是地以一照智。了一切業因業果法界無不一觀。以智知一切眾生識始起一相住於緣。順第一義諦起名善背第一義諦起名惑。以此二為住地故。名生得善生得惑。因此二善惑為本。起後一切善惑。從一切法緣生善惑名。作以得善作以得惑。而心非善惑。從二得名故善惑二心。起欲界惑名欲界住地。起色界惑名色界住地。起心惑故名無色界住地。以此四住地。起一切煩惱故。為始起四住地。其四住地前更無法起故。故名無始無明住地。金剛智知此始起一相有終。而不知其始前有法無法云何。而得知生得一住地作得三住地。唯佛知始知終。是無垢菩薩一切智齊知自地。常住第一義諦中。自然流入'''妙覺海地'''。佛子。住是'''妙覺地'''中。唯現化可名。有無量義有無量名其出一體所謂'''妙果'''常住清淨至若虛空。不可思議不可說不可名數。不可名入界分可得。"}}{{sfn|축불념 한역, 노혜능 번역|K.530, T.1485|loc=하권 〈7. 대중수학품(大衆受學品)〉. pp.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1248&startNum=57 57-58 / 62]. 5주지번뇌(五住地煩惱)|quote=<br>"십신(十信)에서부터 십향(十向)에 이르기까지 자연히 평등의 도(道)에 흘러들지만, 일상(一相)을 얻는 것은 아니고 진실하게 일조상(一照相)을 관하여 초지(初地)의 도에 들어가느니라.
<br>불자여, 다시 이 지(地)에서 바르게 일조지(一照智)를 관하는 가운데 백만 아승기의 공덕문에 들어가느니라. 일상관 중에서 일시에 행하여 나아가 제십지(第十地)에 이르기까지 온갖 마음이 적멸하여 자연히 무구지(無垢地)에 흘러드느니라.
<br>불자여, 다시 이 지에서 일조지로써 일체의 업인업과(業因業果)를 명료히 이해하되 법계를 하나로 관하지 않음이 없느니라. 그것은 지혜로써 일체 중생의 식(識)이 처음 일상(一相)을 일으켜 연(緣)에 머무는 것을 아는 것이니라. 제일의제(第一義諦)에 따라서 일어남을 선(善)이라 하고 제일의제를 등지고 일어남을 번뇌라고 이름 하느니라. 이 두 가지를 가지고 주지(住地)로 하기 때문에 생득(生得)의 선(善), 생득의 번뇌라고 하고, 이 두 가지 선과 번뇌를 근본으로 하기 때문에 후의 일체 선악을 일으키느니라. 일체법의 연(緣)에 따라서 선과 번뇌의 이름이 생기고, 행위 함으로써 선을 얻고 행위 함으로써 번뇌를 얻지만 마음은 선도 아니고 번뇌도 아니니라. 이 두 가지를 따라 이름을 얻기 때문에 선과 번뇌의 두 가지 마음이 있느니라. 욕계의 번뇌를 일으키는 것을 욕계주지(欲界住地)라고 이름하고, 색계의 번뇌를 일으키는 것을 색계주지(色界住地)라고 이름 하며, 마음[心]의 번뇌를 일으키므로 무색계주지(無色界住地)라고 이름 하느니라. 이 네 가지 주지(住地)로써 일지(一地)의 번뇌를 일으키므로 처음 일어나는[始起] 것을 사주지(四住地)라고 하고, 이 사주지 앞에 다시 법이 일어나는 것이 없기 때문에 무시(無始)의 무명주지(無明住地)라고 하느니라. 금강지(金剛智)로써 이 처음으로 일어나는 일상(一相)은 끝이 있음을 아느니라. 그러나 또한 그 최초의 앞에 법이 있는지 법이 없는지 어떠한지를 알지 못하지만, 선천적으로 얻는 일주지(一住地)와 행위 함으로써 얻는 삼주지(三住地)를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부처님만이 시작을 알고 끝을 알 수가 있느니라. 이 무구(無垢)보살은 일체지로써 가지런히 자지(自地)를 알고 항상 제일의제 속에 머물면서 자연히 '''묘각해지'''(妙覺海地)로 흘러 들어가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