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스테파노 9세"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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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정보
|이름=스테파노 9세
1000년에 [[로렌]]에서 태어난 그는 전임 [[교황 레오 9세]]에 의해 추진된 교회 개혁을 주도한 인물들 속에 속한다. 교황은 명문 가문 출신이었다. 형은 로렌의 대공 고드프루아이며 혼인에 의하여 [[토스카나]]의 대공이 되었고 교황 레오 9세와도 친척이었다.
 
[[리에주]]에서 수학하고 의전단에 속한 후 성 람베르트 성당의 수석 [[부제 (기독교)|부제]]로 있다가 1051년 3월 12일 레오 9세에 의해 [[교황청]]의 상서국장과 도서관장이 되어 교황의 보좌관들을 이끄는 주역이 되었다. [[1054년]] [[비잔티움 제국]]에 사절로 갔다가 [[신성로마제국]]의 원수가 될까 두려워 사임하고 몬테카시노에 가서 지냈다. 거기서도 개혁을 시도하였고 훔베르트의 도움으로 그 수도원의 [[아빠스]]가 되었다. [[1057년]] 6월 14일 [[교황 빅토르 2세]]에 의해 로마로 불려 와 추기경이 되고 2달 후에 빅토르 2세가 선종하자 그의 뒤를 이어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신성로마제국 내에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이 일어났으므로 제국의 승인은 받지 않았다. 그는 [[교황 파스칼 1세]] 이래 로마의 성직자들에 의해 자유로이 교황으로 선출된 인물이었다. [[신성로마제국의 하인리히 4세]]는 미성년자라 태후 아그네스가 섭정하고 있었고 교황의 형은 로렌의 대공이었으므로 사실 신성로마제국의 승인이 필요 없었는지도 모른다.
 
교황좌에 오른 후 교회의 개혁과 중앙 집권을 추진하였다. 베드로 다미아노와 훔베르트를 등용하고 [[교황 그레고리오 7세|힐데브란트]]를 사절로 자주 파견하였다. 전임 교황들의 뜻을 받들어 성직매매와 성직자들의 결혼에 대해 개혁을 시도하기 위하여 지방 [[공의회]]를 개최하였다. 또한 그는 동방정교회와의 분열을 정리하고 이탈리아 반도 남부를 침범한 [[노르만족]]을 물리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