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펠라지오 1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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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정보
|이름=펠라지오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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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펠라지오 1세'''(<small>[[라틴어]]:</small> ''Pelagius I'', <small>[[이탈리아어]]:</small> ''Papa Pelagio I'')는 제60대 [[교황]](재위: [[556년]] [[4월 16일]] - [[561년]] [[3월 4일]])이다.
 
펠라지오 1세는 국가 공무원의 아들로서 로마 교회의 [[부제 (기독교)|부제]]였으며 교황이 되기 전에 [[교황 아가피토 1세]]를 수행하여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에 간 적이 있었다. [[545년]] [[교황 비질리오]]가 감금되어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이송될 때 펠라지오는 로마에 남아 교회를 돌보았다. [[토틸라]]의 침입을 받아 로마가 그들의 수중에 들어갔으나 토틸라와 담판을 지어 로마인들의 생명에는 지장이 없게 하였다.
 
그는 [[칼케돈 공의회]]의 결정을 전적으로 받아들였고 삼장서를 단죄하는 데 찬동하였다. [[551년]] 12월 23일 토틸라에 의해 [[유스티니아누스 1세]]와 협상하도록 콘스탄티노폴리스에 파견되었으나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다. 거기서 교황 비질리오의 일행과 합류하여 비질리오가 두 번째로 피신할 때 칼케돈의 유페미아 성당에 함께 있었다. 비질리오와 함께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돌아가서 그를 보좌하였다. [[555년]] 12월 23일 비질리오가 시라쿠사에서 선종하였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유스티니아누스 1세와 협약한 후 풀려나 새 교황이 되어 로마로 돌아갔다. 이는 [[서유럽]] 교회의 수치로 여겨진다. 교황의 부재 중에 로마 교회를 돌보던 마레아스 [[신부 (기독교)|신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해 동로마 제국의 장군 [[나르세스]]가 펠라지오 1세를 교황좌에 오르게 하였으나 귀족들과 성직자들은 환영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