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치 겐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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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치 겐지 초대 도료였던 미나모토노 요리노부는 반도(坂東)에서 일어난 다이라노 다다쓰네(平忠常)의 난을 진압하고 반도에 자신의 세력을 처음 심었으며, 아들인 요리요시와 손자 요시이에(하치만타로)의 대에 [[전9년의 역|전9년]] · [[후3년의 역]]을 통해 반도 지역의 무사들을 산하로 끌어들이고, 하치만타로 요시이에의 대에 무가의 도료가 되었다. 이들을 가와치 겐지 3대라고 부른다(가와치 겐지가 셋쓰 겐지처럼 교토를 활동 무대로 삼지 않고 반도로 낙향한 것은 요리노부가 자신의 형인 요리미쓰의 셋쓰 겐지와 활동 기반이 서로 충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러나 요시이에 만년에 둘째 아들 요시지카가요시치카(義親)가 쓰시마에서[[쓰시마 국|쓰시마]](對馬)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요시이에 사후 가독을 이어받아 영명을 자랑했던 넷째 아들 요시타다도 숙부 요시미쓰의 책모로 암살되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가와치 겐지의 무문으로서의 명성은 손상되었다. 처음 사건의 주범으로 몰린 요시이에의 동생 요시쓰나가 요시타다의 양자 [[미나모토노시라카와 다메요시천황|시라카와인]](요시지카의白河院)의 명을 받은 요시타다의 양자 다메요시(요시치카의 다섯째 아들)에게 토벌당해 죽고, 진범이 요시쓰나가 아닌 요시미쓰로 밝혀지는 등 겐지 내부의 내분과 쇠퇴는 더욱 명백해져 겐지의 권위는 한동안 실추되어 있었다.
 
=== 호겐·헤이지의 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