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상시의 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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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후한]]의 정치와 권력은 [[십상시]]라 불리는 10명의 [[환관]]들이 장악하고 있었는데 [[후한]] 12대 [[황제]] [[후한 영제|영제]]는 무능하고 병약해 [[십상시]]들의 말을 따랐고 수많은 충신들을 죽였다.
 
[[십상시]]는 [[장양 (후한)|장양]], [[조충 (후한)|조충]], [[건석]], [[곽승 (후한)|곽승]], [[단규]], [[후람]], [[조절 (한풍)|조절]], [[하운]], [[정광 (후한삼국지연의)|정광]], [[봉서]]로 이 중 [[봉서]]는 [[184년]] [[황건적의 난]]과 연루되어 옥에 갇혀 처형되었다.
 
[[189년]] [[후한 영제|영제]]의 병이 깊자 [[후한 영제|영제]]는 [[십상시]] 중 한 명인 [[건석]]과 후계자 자리를 논의하고 [[건석]]은 [[후한 영제 (12대)|영제]]의 황후 [[하태후|하황후]]의 오빠인 대장군 [[하진]]을 죽일 계획을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