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사화: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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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과 ==
연산군은, 아버지인 [[조선 성종|성종]]의 총애를 받았으며 어머니의 폐위에 영향을 주었던 [[귀인 엄씨|엄귀인]]과 [[귀인 정씨 (성종)|정귀인]] 등을 죽이고, 그들의 소생도 귀양 보냈다가 죽였다. 조모 [[소혜왕후|인수대비]]는 연산군의 행위를 꾸짖다가 [[화병]]으로 죽었다. 연산군이 윤씨를 왕비로 추숭(追崇)하여 성종묘(成宗廟)에성종묘에 배사(配祀)코자 할 때 이에 반하여 응교(應敎) 권달수(權達手)는 처형되었고, 이행(李荇)은 귀양을 갔다.
 
성종이 윤씨를 폐출하려 할 때 찬성했던 [[윤필상]], [[이극균]](李克均), [[김굉필]], [[이세좌]](李世佐), [[성준 (조선의 문신)|성준]](成逡), [[권주]](權住), [[김굉필]], 이주(李胄) 등 10여 명을 처형했고, 이미 사망한 [[남효온]], [[한명회]], [[정창손]], [[정여창]], [[한치형]](韓致亨), [[어세겸]](魚世謙), [[심회]](沈澮), [[이파]](李坡) 등은 [[부관참시]]에 처했으며, 그 제자와 가족들도 처벌하였다.
 
당시 시신은 부관참시, 쇄골표풍, 능지처참 등 참혹한 형벌들이 연일 진행되었다. 이 참화는 갑자년에 일어났으며, 뒤이어 언문학대(言文虐待)까지 하게 되어 국문학 발달도 침체 상태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