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시국정화운동본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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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원의 엽관 운동 논란 ===
시국정화단 직원이 [[1961년]] 당시 [[박정희]]의 사주를 받은 [[김형욱]]에게 매수되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김형욱]]에 의하면 시국정화운동본부의 실력자인 박모에게 뇌물을 주었다고 증언하였다. 박정희의 지시 로 나는 [[육군 정보학교]] 교장 이었던 [[한웅진]]을 [[대한민국 육군|육군]]방첩부대(CIC)
대장으로 임명하고 혁명 계획 수행 에 따르는 전 정보 를 주관시키려고 시도했으나 실패하기도 했다<ref name="kimhy">김형욱, 《권력과음모: 전 KCIA 부장 김형욱의 수기》(뉴코리아타임스사, 1982) 23페이지</ref> 한다.

[[김형욱]]에 의하면 '없는 돈을 만들어 쑤셔넣어 주면서 까지 한웅진의 엽관 운동을 벌 였으나 그후 문제 의 박이 시국 정화 운동 본 브세 서 밀려나 혓탕 을 치고 만 것이다<ref>김형욱, 박사월, 《김형욱 증언:혁명과 우상 제1부》 (독립신문사, 1982) 34페이지</ref>'라고 하였다. 당시 [[민주당 (1955년)|민주당]] [[내각]]의 총리직속 정보기관 격이던 시국정화운동본부의 실력자 박이라는 사람을 만나, 없는 돈을 만들어 쑤셔 넣어 주면서까지 한웅진의 엽관운동을 벌였으나 그 후 문제의 박이 시국정화 운동본부에서 밀려나 허탕을 치고 만 것이었다.<ref name="kimhy"/> 뇌물을 받고 쿠데타 기도를 위한 [[김형욱]]의 엽관운동을 봐준 대가로 이 직원은 타 기관으로 전출되고 말았다.
 
== 기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