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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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흠'''(文欽, ? - [[258년]] [[음력 1월|정월]])은 [[중국]] [[삼국 시대 (중국)|삼국 시대]] [[위 (삼국)|위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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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는 재주와 무용이 있다고 칭찬을 받았다.
219년 [[업 (중국)|업(鄴)]]의 수비가 허술하다는 것을 노리고 [[위풍|위풍(魏諷)]]이 구데타 계획을 세웠으나 누설되어 처형되었으며, 문흠도 이 사건에 연루되어 사형에 처해질 뻔했으나, 아버지의 [[문직]](文稷)의 공으로 인해 [[조조]](曹操)가 사면해 주었다고 한다.
[[태화 (위)|태화]](太和)연간에 오영교독이 되었고, 아문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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