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학당: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using AWB
24번째 줄:
|ID=ISBN 9788985407359
|쪽=84~86쪽
}}</ref> 그래서 아예 과년한과년(瓜年)한 여학생을 선교사들이 나서서 결혼시켜 주기도 하였다. 선교사가 여학생의 보호자가 되어 신랑감도 구해주고, 혼수도 장만해 주었다. 다만 조건이 까다로웠는데, 반드시 [[프로테스탄트]] 종파인 북[[감리교]] 신자여야 했다.
 
이화학당 선교사가 주선한 결혼식 가운데 한국 처음의 서양식 결혼식은 [[1897년]] 4월 18일 열렸으며, 신랑 조만수와 신부 김륜시였다. [[1879년]]생이었던 김륜시는 이화학당을 9년 동안 다닌 학생이었고, 조만수는 1876년 1월 1일에 [[과천]]에서 태어나서 17살 때 상경하여 이화학당장 조세핀 오펠리아 페인의 한국어 교사였다가 나중에 [[1899년]] 이화학당 회계 겸 초대 서무주사가 되었다. 김륜시는 결혼 후 당시 평동 91번지에 있던 이화지교(梨花支校, 일종의 부속학교)에서 근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