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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난 & 가족의 빚 청산 ===
가난한 집안 환경 또는 가족의 빚을 청산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위안부에 지원하는 케이스도 존재하였다. [[1942년]] [[5월]] 초순 일본이[[일본]]이 새로 정복한 동남아시아에서의[[동남아시아]]에서의 위안 서비스를 위해 한인 위안부를 모집하려고 [[일본인]] 주선인들이 한국에 도착했다.<ref name="mojip473">강만길, 《한국민족운동사론》 (서해문집, 2008) 473페이지</ref> 이들 주선인들은 '많은 돈, 가족의 부채를 없이 하는 기회, 쉬운 일<ref name="mojip473"/>' 등이었다. 이 조건에 현혹되어 많은 여성들은 해외 모집에 응했고 기백 원의 착수금을 받았다.<ref name="mojip473"/>
 
가족의 빚을 갚기 위한 돈을 미리 받고, [[상이군인]] 간호 등의 감언에 속아서 [[버마]] 전선에 끌려가 종군위안부가 된 이들도 있었다.<ref name="mojip473"/> 이들은 종군위안부가 아니라 [[채무]]에 의해 성노예의 처지에 빠졌다.<ref name="mojip473"/> 일부 여성들은 '농촌지역의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던 소녀들<ref name="mojip474">강만길, 《한국민족운동사론》 (서해문집, 2008) 474페이지</ref>'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