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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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혼성 여단(소형 사단)은 1934년에 창설되어 중일전쟁 이후는 점령지 치안 유지를 주목적으로 100여개 가량 편성되었다.독립 혼성 여단의 편제의 특징은 예하 여단 대신, 독립 보병 대대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중국에 주둔하는 독립 혼성 여단 중 24여개 여단처럼 후에 사단으로 증편되는 예도 많았따. 이 외에도 68 여단이나 육상 기동 여단처럼 같은 규모의 보병 여단이면서 독립 혼성 여단을 명명하지 않는 편제도 있었다. 전차 사단을 축소하여 전차 연대를 배속하여 보병을 포함한 독립 전차 여단도 존재했었다.
 
사단 예하 여단과 독립 혼성 여단의 중간적인 여단도 [[태평양전쟁]]에서 나타났다. 이것은 102 사단처럼 독립혼성여단을 개편하여 사단으로 보이는 것이다. 사단 예하에 2개 보병 여단이 편성되어 있는게 사단에 가깝나가깝거나, 각 여단 예하에는 연대가 없고 다수의 독립 혼성 여단처럼 독립 보병 대대가 편성되어 여단 작업대(공병부대와 비슷함)나 여단 통신대 등 약간의 특수 병과 부대를 가지는게 많았다. 이러한 여단이 있는 사단은 부산하여 치안임무를 맡기는게 원래의 임무로, 다수의 독립 보병 대대의 관리나, 여단 단위로 독립 행동을 취하기 위한 편제이다. 109 사단 등의 부대도 유사 혼성 여단 2개로 구성되었다.
단일 병과로 구성된 독립 여단은 [[청일전쟁]] 후의 군비확장으로 포병 여단과 기병여단(소형 기병 사단 편제로 보임)이 2개씩 편성되어 있는게 최초였다. 그때까지의 같은 독립 부대는 있었으나, 소규모로 여단 편제된 부대는 없었다. 그 후, 야전 중포병 여단 등이 여러 창설되었다. 독립 전차 여단에서도 예하 보병을 두지 않고 타 부대와의 협력을 전제로 한 여단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