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월드 항공 800편 추락 사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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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생유형 = 공중폭발
| 발생원인 = 전기합선으로 인한 연료탱크 폭발
| 발생장소 = 대서양
<!-- 비행내역 -->
| 기종 = [[보잉 747|B747-131]]
| 소속 = 트랜스월드 항공
| 등록번호 = N93119
| 출발지 = [[
| 경유지 = [[파리 샤를
| 목적지 = [[레오나르도 다 빈치 국제공항]]
<!-- 피해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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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존자 =
}}
'''
== 사고기의 행적과 상황 ==
사고기인 기체 등록번호 N93119는 1971년 7월
사고 당일 사고기는 TWA 881편으로 그리스의 아테네를 출발했으며, 16시 38분경에 대해
800편은 19시 경에 JFK 공항을 출발하여 프랑스로 향하기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예정했던 시간에 비해 지상 장비와 승객의 수화물 불일치에 의한 장애로 인해 한 시간 정도 지연되었다. 후에 해당 수화물의 소유주가 확인되어 비행 승무원들은 출발을 준비하였으며, 그리고 사고기는 20시 2분 경에 TWA 터미널 27번 게이트에서 다시 출발하여 20시 19분 경 JFK 공항 22R 활주로에서 이륙하였다.
800편은 의도된 비행 고도를 위해 표제 변경 사항과 통상적인 고도 상승을 위한 과제의 일련의를 받았다. 당시 기상상황은 빛 바람과 구름이 간간히 있었으며, 비행하기 아주 적당한 조건이었다. 20:30 경에 사고기로부터 마지막 무선 전송을 받았을때 비행 승무원이 보스턴 항공교통 관제센터(ARTCC)에서 비행지침을 받은 후에는 고도가 15000피트(4600m)였다. 사고기로부터의 마지막 레이더 송신기록은 [[미국 연방 항공국
38초 후 부근을 비행중이던 [[이스트윈드 항공]]([[:en:Eastwind Airlines|en]]) 보잉 737의 기장이 처음으로 보스턴 ARTCC에 "주위에서 폭발이 일어났다"고 보고하였는데, 덧붙여 "우리는 그냥 앞에서 폭발을 봤다... 16000피트
미 해군, 그 외 각종 민간 선박, 해양 경찰이 추락 지점에 도달하여 몇 분간은 혹시나 있을지 모를 생존자에 대한 수색을 시작하였으나, 생존자는 발견되지 않았으며, 본 TWA
== 처음의 조사 ==
=== 수색과 회수작전 ===
수색과 회수작전은 연방정부 관리에 의해 지휘되었다. 원격 심해 잠수정, 측면 음파 탐지기, 그리고 레이저 광선 탐지기 장치로 수색과 해저의 파편이 모여있는곳을 조사하였다. 희생자의 시신과 잔해는 스쿠버 다이버와 원객 심해 잠수정에 의해 회수되었으며;최신 가리비 트롤어선은 해저에 묻힌 잔해를 회수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이제까지 가장 큰 잠수부 원조로 인양작업이 지휘되었으며, 간혹 매우 어렵고 위험한 조건이었는데, 마침내 95% 이상의 잔해 회수로 이어졌다. 수색과 회수를 위한 노력은 해저에 위치한 잔해가 모여있는 주요 3개 지점을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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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TWA Flight 800 zones.png|잔해가 회수된 지역
파일:Twa 800 fig 22b.PNG|각 지점에서 찾아낸 잔해는 항공기의 특정한 구역에 대응한다.
파일:Twa 800 fig 22c.PNG|바다에 곤두박질칠때 잔해의 경로.
</gallery>
잔해 조각들은 배를 통해 해안가로 운반된 다음 트럭수송으로 뉴욕 칼버튼에 위치한 [[칼버튼 비행장]]([[:en:Calverton Executive Airpark|en]])의 창고로 운반되어 사고기에 대한 조사와 복원이 실시되었다. 이 시설에서는 조사를 위한 지휘센터와 사령부가 설치되었다. NTSB와 FBI 요원들은 잔해의 증거적 가치를 보전하기 위해 모든 이동을 관찰하였다. [[블랙박스|조종실 음성 기록장치와 비행
=== 조사과정에서의 긴장 ===
800편 승객, 승무원의 친인척 뿐만 아니라 언론매체에 대해서도
엄청난 분노와 정치적 압력은 또한 서퍽 의학연구소의 찰스.V 웨틀리 박사가 회수된 희생자들의 시신을 시신 공시소에 안치할것을 지시한다. 일정하고 상당한 압력으로 인해 희생자 확인 작업이 지연되어, 병리학자는 쉬지않고 작업을 해야했다. 1차적인 목적은 상세한 법의학적 부검의 실시 보다는 오히려 모든 증거물을 확인하기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완전한 검사 결과는 매우 변하기 쉬웠다. 궁극적으로, 모든 230명의 피해자중 남아있는 시신들을 회수하고 확인하는데까지 나중에 마지막까지 10개월 이상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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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목격자들은 사고당시 평소 "빛의 줄기"가 위로 상승하는것이 눈에 보였다고 설명하였는데, 그것이 움직인 끝 지점에서 큰 불덩어리가 출현했으며, 몇몇 목격자들은 그것이 두개로 분열되어 바다 수면을 향해 하강했다고 보고하였다. 거기에는 목격자들의 보고와 많은 추론이 강렬한 대중적 관심을 불러일으킬수 있는 내용으로 빛의 줄기가 800편을 친 미사일이었는데, 그것이 폭발의 원인이었다는 것이었다. 이 목격자들 주장의 근거로는 FBI의 범죄 수사 착수와 기간에 대한 동기였다.
대략
사고 주간동안 NTSB는 목격자 모임과 사고 당시 목격자 인터뷰를 위해 그들의 계획을 알렸다. 그러나 후에 FBI에 의해 NTSB 조사팀에 있는 비정치적인 조직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였다 같은 목격자의 다양한 증언에서부터의 접근은 이 정보와 검사의 가능성에 어려운 결과를 초래하였는데, NTSB는 처음에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가 사고 목격자에 대한 재인터뷰를 연기하였다.
== 진전된 조사와 분석 ==
조종실 음성 녹음기록(CVR)과 비행 기록장치를 조사한 결과 20시 30분 12초경 갑자기 음성기록이
=== 비행중 공중분해의 가능성이 있는 원인들 ===
조사자들은 구조적인 분해로 이어질 만한 몇몇 가능성들을 조사하였다; 구조적 결함과 감압, 높은 에너지를 가진 폭발물의 폭발, 그러한 힘을 보유한 항공기 타격 미사일 탄두 또는 항공기 내부에 장착된 폭발물, 날개측 중앙 연료탱크에서의 연료와 공기 혼합으로 인한 폭발이었다.
==== 구조적 결함과 감암 ====
잔해의 세밀한 조사결과 비행 중 공중 분해를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 있었던 피로 부식 또는 기계적인 손상과 같은 구조적 결함의 아무런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다. 또한 비행중 앞부분 카고도어의 열림으로 인해 기체 분해가 시작되었음을 암시하기도 했는데, 하지만 모든 증거는 어떠한 충격에도 카고도어가 닫히고
==== 미사일 또는 폭발물 ====
장거리와 공항 레이더에서 기록된 내용의 검토는 사고가 일어날 당시 800편 주변의 다수 비행기들간의 연락을 드러냈다. 이 구역에서는 800편 위치와 가로지르는
NTSB는 수색 및 구조 작업 지원 과정과 원조 실패에 의한 증거, Islip
NTSB는 800편의 잔해가 곤두박질친 구역에서 왜 항공기의 경로와 진행에서 방향을 전환하지 않았는지 결론을 내리기 위해 30노트 목표물 궤도에 대해 재검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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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기의 구조적 분해에 관한 연속적인 과정을 평가하기 위해, NTSB는 연속적 결과를 분류하였는데, 회수한 개별적인 항공기 구조물의 조각을 조사하였으며, 2차원 복원 또는 항공기 부분의 구획과 다양한 크기로 항공기의 일부를 3차원으로 복원하였다. 덧붙여 조각에 있는 화재 흔적에 대해 통상적으로 회수될 당시의 잔해 조각과 다르다는 것에 대해 근접하여 조사하였다. 이 연속적인 분류는 공중 분해 과정의 첫번째 순간이 날개측 중앙 연료탱크 부분의 "과도한 압력"에 의해 항공기의 중앙 날개부분 파손이라고 말하고 있었다.(CWT) 따라서 과도한 압력은 날개측 중앙 연료탱크 구조물의 압력 효과 실패로 급격한 진행으로 정의되었다.
비행기의 구역(또는 어떤 다른 구역)에서 높은 에너지 폭발물의 폭발 증거는 유일하게 날개측 중앙 연료탱크 내부의 연료/공기 혼합물 폭발이었는데, 이 과도한 압력 효과에 기인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현 시점에서 800편 날개측 중앙 연료탱크의 연료가 소량이었다고 해도, 비행 조건을 재구성 하는 시험은 가연물 이기 때문에 잔여 연료/공기 혼합물의 증발을 보여주었다. 747 항공기의 날개측 중앙 연료탱크에 있는 연료/공기혼합물 기체가 가연성인 주된 이유는 연료탱크의 밑에 직접적으로 위치한 냉방장치에 의해 날개측 중앙 연료탱크에 다량의 열이 발생하고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컴퓨터 모델링과 축소 모델을 통한 테스트는 어떻게 747기의 날개측 중앙 연료탱크에서 폭발이 진행되는가에 대한 예측과 논증을 하는 것이었다. 이 시간 동안 날개측
날개측 중앙 연료탱크의 연료/공기 혼합물 폭발이 연료탱크와 항공기의 파괴를 야기하는 충분한 압력을 발생시킬수 있는가에 대해 더 확실히 결정하기 위해 1997년 7월과 8월 사이 영국의 브룬팅소프 비행장에서 퇴역한 747기를 사용한 테스트가 실시되었다. 이 테스트는 프로판/공기혼합물 점화에 의한 날개측 중앙 연료탱크 내부의 연료/공기 혼합물 폭발을 가장한 것으로; 이 결과 연료탱크 구조물의 실패이면에는 적정한도 이상의 과도한 압력이 가해진것이 밝혀졌다. NTSB가 그 동안 브룬팅소프에서의 실험조건과 사고 당시의 TWA 800편에 존재했던 조건을 완전히 비교할수 없었기 때문에, 이보다 앞서 상업용 항공기의 날개측 중앙 연료탱크 내부에서의 폭발과 같이 아비앙카 항공 203편과 필리핀 항공 143편 모두 날개측 중앙 연료탱크 폭발로 연료탱크가 파괴되어 흩어지고 이것이 항공기의 공중분해를 이끌어낸 결과라는 심증을 굳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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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고 원인 ==
당시
▲당시 비행기는 노후가 심각하게 진행되어 있었다. 사고 직전 조종사들은 메인 연료탱크의 연료를 모두 썼다고 판단하여 메인 연료 탱크에서 날개에 있는 연료탱크로 밸브를 잠그고 다른 곳으로 옮겼다. 그러나 연료가 조금 남아있던 메인 탱크의 피복이 벗겨진 전선에서 스파크가 일어나 폭발하였고, 폭발로 동체가 두 부분으로 분리되면서 머리 부분이 먼저 추락하였고, 동체 뒷부분은 급상승 후 다시 급하강을 하며 추락하였다.
{{항공 사고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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