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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탁의 잔당인 [[이각 (후한)|이각]](李傕) 등은 왕윤에게 용서를 빌었으나, 왕윤은 이를 거절했다. 궁지에 몰린 이각 일당은 [[가후]](賈詡)의 계책을 받아들여 군사들을 모아 장안을 공격하였다. 왕윤은 여포로 하여금 맞아 싸우게 했으나, 장안성 안에서 익주 출신 병사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6월 1일 이각군을 끌어들이는 바람에 전황이 불리해졌다. 견디지 못한 여포는 왕윤에게 달아날 것을 권했으나 왕윤은 죽음을 각오하고 여포를 떠나보냈다.
 
장안을 점령한 이각 등은 헌제가 있는 곳으로 다가와 왕윤을 내줄 것을 청하였다. 이들은 제발로 걸어나온 왕윤에게 동탁이 무슨 죄를 지었느냐면서 꾸짖고, 왕윤의 형으로 외지에서 벼슬하던 [[왕굉 (장문)|왕굉]](王宏)과 송익(宋翼)을 장안으로 불러들여 6월 7일 왕윤과 함께 처형했다. 이각은 왕윤의 시체를 거리에 내걸고 왕윤의 가족들도 모두 죽였다. 왕윤의 옛 부하였던 조전(趙戩)은 왕윤의 시체를 거두어 장사지냈다. 조전이 후일 위 무왕에게 초빙된 것은 바로 이 의리 때문이다.
 
허(許)로 천도한 후, 헌제는 왕윤의 충절을 기려 호분중랑장(虎賁中郞將)에 추증하는 한편 손자 왕흑(王黑)을 안락정후(安樂亭侯)에 봉하고 식읍 300호를 내렸다.<ref>[[범엽]](范曄), 《[[후한서]](後漢書)》</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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