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원황후 (전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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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군 원성현(魏郡 元城縣)의 출신으로, 당시 황태자인 한원제 유석의 총애를 받아 성제를 낳아, 원제의 정실이 된 후, 한선제의 사망으로, 아들인 유석이 제위를 이어받았고, 태자비 왕정군은 황후으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한 성제가 태어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당시 총애하는 애첩이 일찍 죽었던 유석은 그 충격으로 여인들을 멀리 하였다. 이 때, 유석이 후사가 없었고, 평소에 아들의 무기력한 행동에 싫어한 한선제는한 선제는 이 일로 빌미로 유석를 태자 자리에 폐위를 염두에 두기 시작하였다. 한 선제의 마음을 알아챈 계모(한 원제의 생모인 허황후는 일찍 사망하였다.)인 왕황후(효원왕후 왕정군과 같은 성씨를 가진 인물.) 및 유석의 측근은 그에게 아이를 둘것을둘 것을 요구하였고 부득이 하게 유석이 처소에 부른 여인이 왕정군이었다. 한 번의 관계로 왕정군은 한성제한 성제 유오를 임신하였고, 후에 출산하였다. 한선제는한 선제는 손자가 태어난 것을 기쁘게 생각하였고, 자신이 손자 유오를 키우기로 결정하였다. 유오가 태어난 뒤 유석이 태자 지위를 유지하였고, 이후 유석이 왕정군에게 사랑을 주지 않았다.
=== 황태후가 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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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조카 왕망과 대립한 결과, 한 평제가 독살되어 유영(劉嬰)을 황제로 옹립 되어 왕망이 주나라의 [[서주 성왕|성왕]](成王)과 [[주공 단]](周公旦)의 고사에 모방하여, 가황제(仮皇帝)를 자칭하자, 당시에 전국 옥새를 보관하고 있던 황태후 왕정군에게 전국옥새를 자신에게 인도하도록 요구했을 때, 왕정군은 격노하였고, 왕망의 사자인 [[왕순 (전한)|왕순]](王舜)을 잡고, 왕망에게 비난을 말하고, 왕정군은 옥새를 왕순을 향해서 내던지고 쓰러져 울었다고 한다. 덧붙여서, 이 때 떨어진 옥새는 일부가 훼손되었다고 한다.
왕망이 황제로 즉위 하였고즉위하였고, 왕정군은 '''신실문모태황태후'''(新室文母太皇太后)의 칭호를 받았으며 그녀가 지낼 거주지를 마련하였다. 그리고, 그녀가 거주한 곳은 한 때의 한 원제의 종묘를 철거하여 새로 축조한 궁전이었다. 거기서 효원황후 왕정군을 위로하는 연회가 열렸지만, "이렇게 되어 어째서 연회를 즐길 수 있을까?"라고 말하며, 연회를 즐기지 않았다고 한다.
 
[[분류:기원전 71년 태어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