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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신시는 일부 기록에서 인명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허목]]의 《[[동사 (허목)|동사]](東事)》나 《[[규원사화]]》에는 [[환웅]]을 ‘신시씨(神市氏)’라 지칭하고 있고 《[[규원사화]]》에는 [[단군조선]]을 '단국(檀國, 박달나라 또는 배달나라)'<ref><지명> 상고 시대 이름. 한자를 빌려 ‘倍達’로 적기도 한다. [비슷한 말] 단국3(檀國)ㆍ배달나라. (네이버 백과사전 참조)</ref>으로 설명하였다.
 
또한 [[1811년]]([[조선 순조|순조]] 11)에 [[정약용]](丁若鏞)은 편찬한 [[조선]] 강역에 관한 역사지리서,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에서 산정이 늘 하얀 눈으로 덮여 있어 백두산이라 불렀고, 시조 [[단군왕검]]이 이곳에서 탄생하여 단국(檀國)이라는 나라를 기원전 2333년에 창건<ref>{{뉴스 인용|url=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810/h2008100102404284330.htm|제목=박창범 "개천절은 음력으로, 개국일은 요 원년으로"|이름=김희원 기자|작성일자=2008-10-01|출판사=한국일보|언어=한국어|확인일자=2013-06-21}}</ref>하였으며하였지만 거슬러 올라가 보면 [[한민족]] 기원에 [[환웅]] 역시 이곳에서 탄생, 신시(神市)라는 나라를 개국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ref>白頭山(백두산)의「眞面(진면)」속속 책으로, 1991.03.16, 경향신문 22면, 생활/문화 기사(뉴스) 참조</ref>
 
== 의미 ==
신시는 신정시대(神政時代)에 도읍 주변에 있던 별읍(別邑)으로 [[삼한]]의 [[소도]](蘇塗)와 같은 성격의 신읍(神邑) 또는 성역으로 해석된다. 또는 지명이 아닌 환웅을 가리키는 인명으로서 삼한의 신지(臣智)와 같은 존칭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ref>이병도, 《한국사 -고대편-》, 진단학회, 을유문화사, 1959년</ref>
 
'신시'를 글자 대로 풀이하자면 '신의 시장(저잣거리)'이다. 신시를 신의 도시로 해석하는 것이 종래의 설이나, 시(市)가 도시의 개념으로 사용된 것은 근대 이후므로 신시를 신불(巿:슬갑 불; 巾-총4획)로 읽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불은 고대말로 현재의 땅이라는 뜻으로 '벌'이라는 현대어가 남아 '벌판'등으로 쓰인다<ref>신종원, 단군신화에 보이는 樹木信仰, 韓國史學史學報 8, 5-22 (2003) </ref>. 후대의 서라벌, 신라, 서울과 동형으로같이 필요에 의해 자연적으로 생성한 형태로 보기도 한다.
 
== 야사 속의 신시 ==
《[[규원사화]]》의 〈태시기(太始紀)〉에는 신격에 가까운 존재인 환웅 또는 신시씨가 인간세상을 다스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치세 기간은 궐천년(闕千年, 11000년) 또는 궐백년(10100년)이라 한다. 신시씨는 치우씨, 고시씨, 신지씨, 주인씨 등을 부렸다고 하며 《환단고기》와 일부분 중복되는 치세 기록이 존재한다. 전체적인 성격으로 본다면, 〈태시기〉는 창세를 다룬 〈조판기〉를 이어 처음 생겨난 인간이 문명을 이룩하여 최초의 나라인 고조선을 세우기 직전 단계에 이르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환단고기]]》에서는 신시를 [[환단고기#신시배달국|신시배달국]]이라 기록하고 있다. 《환단고기》에 따르면 신시배달국 또는 배달국은 고조선 이전의 고대 국가로 기원전 4000년 경에 [[환국]]의 뒤를 이어 성립되었으며 1565년간 존재하였고 그 군주가 바로 [[환웅]]이라고 한다. 환웅은[[환웅]]은 모두 18대를 이어 신시배달국을 다스렸다고 하며, 그 상세한 역년도 기록되어 있다.

또한 역대 [[환웅]]들 가운데 일부의 치세도 기록되어 있는데 특히 14대 [[환웅]]인 자오지환웅의 기록이 상세하다. 일부 재야사학자 및 네티즌들은 《[[환단고기]]》의 내용을 신봉하여 신시배달국 또는 배달국이 만주 및 한반도, 화북 지방을 지배한 초강대국이며 그 군주인 자오지 환웅은[[환웅]]은 중국의 역사서에 기록된 악신 [[치우]]라고 주장한다.주장하고<ref>임승국 주해, 《한단고기》, 정신세계사, 1986년 등</ref> [[중국]] 사서에 ‘구리’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ref>여운건·오재성, 《과학으로[[중국]] 밝혀진[[사마천]]의 우리고대사《[[사기 (역사서)|사기]](史記),에는 2004년</ref>“[[신농씨]]의 그러나후계 대부분의[[치우]]가 한국사학계에서는구려족(동이)의 이들이임금”이라고 근거로쓰여있다. 삼는(구려국의 야사들이임금을 대부분치우라 한다(九黎之君號曰蚩尤), 치우는 고대의 천자이다(蚩尤古天子), 《[[위서서경 (역사학)|위서서경]]이며(書經)》을 인용하여 내용기록) 또한<ref>여운건·오재성, 신빙성이《과학으로 없기밝혀진 때문에우리고대사》, 이를2004년</ref>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사학계에서는 이들이 근거로 삼는 야사들이 대부분 [[위서 (역사학)|위서]]이며 그 내용 또한 신빙성이 없기 때문에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다만 기록을 참고하여 신화적인 나라형태로 존재했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즉, [[환웅]]이 만주 홍산 지역의 넓은 평원이 배달국에 적합한 것으로 결정을 내리고, 신시를 세웠고 신과 인간이 함께하는 도시로 신이 인간의 몸으로 내려오고, 인간이 노력하여 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도시를 이루어 신시 배달국에서 본격적인 선진 문물이 전수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ref name="신시">{{서적 인용|저자=김대선, 카르멘텔스|제목=동이족의 숨겨진 역사와 인류의 미래|꺾쇠표= 예|연도=2011|출판사=|수선재|ISBN=9788989150787}}</ref>
 
《[[부도지]]》에는 신적 존재인 환웅씨가 인간 세상을 다스렸다는 내용이 나타나며 ‘신시’는 [[단군]]이 [[고조선]]을 세운 이후에 함께 모여 서로 돕고 화합하고 이치를 배우는 자리로서 세워졌다고 한다. 신시는 10년마다 열렸으며, 마음을 정화하고 하늘을 살피며, 희생물로 제를 지내고 모여 노래하는 곳이라고 한다.
 
김교헌의 《[[신단민사]]》에는 천신(神市氏)이 개천 갑자 상달(10월) 초사흗날(3일)에 ‘신시’의 시대를 열고 120년간 백성을 가르치고, 무진년 10월 단군이 나라를 세웠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김지하]]는 신시를 여러 부족들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장을 연 것이라고 한다.<ref>[http://www.chosun.com/culture/news/200506/200506260270.html 김지하, 《문명의 시원을 찾아서》<4>‘장바닥에 비단이 깔릴 때’]</ref>
 
[[김지하]]는 신시를 여러 부족들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장을 연 것이라고 한다.<ref>[http://www.chosun.com/culture/news/200506/200506260270.html 김지하, 《문명의 시원을 찾아서》<4>‘장바닥에 비단이 깔릴 때’]</ref> 한편 [[1983년]], [[랴오닝성]] [[링위안 시]]에서 [[젠핑 현]]에 걸친 넓은광범위한 범위에서지역에서 발견된 [[훙산 문화]](뉘우허량 유적, 牛河梁遺跡, Niuheliang)를 계기로 학계에서도 점차적으로점차적인 관심과 함께 [[훙산 문화]]와 신시배달국의 역학관계를 비롯하여 [[훙산 문화]]를 정점으로 하는 [[요하문명]]을 조명하여 추적{{·}}연구하고 있다. <ref>{{뉴스 인용|url=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402816.html|제목=7층짜리 거대 피라미드는 ‘판도라 상자’|이름=우실하 교수(한국항공대학교 인문자연학부), 정리 박종찬 기자|작성일자=2012-09-24|출판사=한겨레신문|언어=한국어|확인일자=2013-06-09}}</ref>
 
== 주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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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이 보기 ==
* [[환웅]]
* [[삼국유사]]
* [[환단고기]]
 
== 참고자료 및 링크 ==
* 일연, 《삼국유사》
* 북애자, 《규원사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