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학당: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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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했다.
 
학당훈(學堂訓)은 '큰 인물이 되려는 사람은 남을 위해 봉사할 줄 알아야 된다(欲爲大者當爲人役)'고 해 기독교적 교훈(마태복음20장26-28절 말씀)으로 봉사적 인물을 양성하려 하였다. 교과목으로는 한문·영어·천문·지리·생리·수학·수공·성경 등이 있었고, 그 외의 과외활동으로 연설회·토론회와 같은 의견발표의 훈련을 시켰고, 정구·야구·축구 등 운동을 과하였다. 1887년 9월부터 한국학생들에게 신학교육을 실시하였고, 1893년부터는 정규적인 신학교육도 함께 이뤄졌다. 학교운영방침에 이어 학년을 두 학기로 나누었으며, 수업료는 종전의 물품 대신 돈으로 받았고, 입학과 퇴학의 절차를 엄격히 규정하여 근로를 장려하였다. 1893년 8월에 열린 미 감리회 한국 선교회 19차 연회에서는 아펜젤러를[[아펜젤러]]를 '배재대학 학장 겸 신학부 부장'으로 임명했으며, 배재대학은 지금의 배재중고등학교와 배재대학교의[[배재대학교]]의 모체가 되며, 신학부는 지금의 감리교신학대학교의[[감리교신학대학교]]의 모체가 된다.
 
== 저명한 동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