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구 (조선):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편집 요약 없음
1번째 줄:
'''이서구'''(李書九, [[1754년]]∼[[1825년]])는 [[조선]]의 문신·학자이다. 자는 낙서, 호는 척재,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조선 제14대 임금인 선조대왕의 열두째아들인 [[조선 인흥군 |인흥군(仁興君)]]의 후손으로 [[조선 영조|영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사관·지평·경상우도 암행어사 등을 지냈다. 1795년 [[조선 정조|정조]] 때 천주교도를 옹호한다는 죄로 영해부에 유배되었다가 대사성이 되었다. 이듬해 교정당상이 되어 왕명으로 <장릉지>를 편찬했으며, 1800년 [[조선 순조|순조]] 때 호조판서로 지실록사가 되어 <[[정조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그 후 형조판서·대사헌·대호군을 거쳐 우의정에 올랐으며, 판중추 부사로 재직중 죽었다. 명문장가로서 특히 시명이 높아 [[박제가]]·[[이덕무]]·[[유득공]]과 함께 한시의 4대가로 알려졌으며 5언 고시에 능했다. 저서로 <서산집> <장재집> <여지고> 등이 있다.
 
{{글로벌세계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