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루치오 1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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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치오 1세는 데키우스 황제 치하에서 일어난 기독교 박해 당시 배교한 신자들 중에 회개한 이들을 다시 교회 안에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한 [[노바시아노주의|노바시아노주의자]]들을 비난하고, 전임 교황의 관대한 정책을 고수하였다. [[치프리아노]]는 이에 대해 서신을 보내 루치오 1세에 대하여 ‘가장 친애하는 형제이자 존경하는 증거자’라고 칭하며 찬사를 보냈다.
 
루치오 1세는 로마에 귀환한 후 몇달 만에 선종하였다. 그의 축일은 3월 4일인데4일이며, 그 이유에 대해 《[[로마 순교록]]》에는 다음과 같이같은 적고기록이 남아 있다. “로마의 아피아 가도에 있는 갈리스토 묘지에는 성 고르넬리오의 후임자인 성 루치오 교황의 무덤이 있다.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위해 그는 추방의 고통을 겪었으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깊은 신앙심과 뛰어난 분별력과 강한 절제심을 지녀 사목 활동을 훌륭하게 수행하였다.”<ref>Romae via Appia in coemeterio Callisti, depositio sancti Lucii, papae, qui, sancti Cornelii successor, pro Christi fide exsilium passus est et, fidei confessor eximius, in angustiis tempestatibus suis moderatione ac prudentia se gessit [2''Martyrologium Romanum'' (Libreria Editrice Vaticana, 2001 ISBN 9920972107].</ref>
 
<ref>Romae via Appia in coemeterio Callisti, depositio sancti Lucii, papae, qui, sancti Cornelii successor, pro Christi fide exsilium passus est et, fidei confessor eximius, in angustiis tempestatibus suis moderatione ac prudentia se gessit [''Martyrologium Romanum'' (Libreria Editrice Vaticana, 2001 ISBN 9920972107].</ref>
 
루치오 1세가 갈리스토 묘지에 묻혔다는 것은 그의 묘비명이 증거하고 있으며 사망자들의 명단에 기록되어 있는 《주교 목록》의 첫 번째 인물로 순교자들처럼 영웅적인 기독교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