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순학: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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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집으로 《당풍집(唐風集)》 3권이 있으며, 고운(顧雲)이 그 서문을 지었다. 송대 엄우(嚴羽)는 《창랑시화(蒼浪詩話)》 · 시체(詩體)에서 그의 시체를 두순학체(杜苟鹤體)로 분류하였다. 한편 고려 말기의 저본을 바탕으로 조선 초기에 성립된 《협주명현십초시(夾注名賢十抄詩)》중권에 최치원, [[박인범]] 등 신라의 빈공제자 4인과 함께 두순학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일본 [[센고쿠 시대]] 시오야마 에린지(塩山恵林寺)의 승려로, [[다케다 신겐]]과도 교분이 있었던 가이센 쇼키(快川紹喜)가 에린지로 도망쳐 숨은 [[롯카쿠 요시하루]](六角義弼) 등 세 사람의 신병을 인도하라는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의 요구를 거절하고 오히려 그들을 몰래 도망치게 해주어, 노부나가에 의해 방화되고 불타는 절 속에서 죽음 직전에 읊었다는 「훌륭한 선(禪)은 반드시 산과 물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마음자리(心頭)가 적멸(寂滅)에 이르면 불도 스스로 시원하거늘(安禪は必ずしも山水を須ゐず、心頭を滅却すれば火も亦た涼し)」는 중국의 《[[벽암록]](碧巌録)》에 수록된 것으로 원래는 두순학의 시 「여름날 오공 상인의 거처에 제하여(夏日題悟空上人院)」에서 따온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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