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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10월 19일]]부터 [[1906년]] [[7월 3일]]까지의 윤치호 일기 수필원본은 30여 권의 대학공책과 종이 묶음, 수첩류 등에 기재되어 있다. [[1910년]]부터 [[1915년]] 사이의 일기는 실전되었는데 [[윤영선]] 등에 의하면 [[윤치호]]가 [[105인 사건]]으로 [[조선총독부]] 경찰에 끌려갔을 때 압수당하여 돌려받지 못했다 한다. [[1916년]]부터 [[1943년]]까지의 수필원본은 모두 [[미국]]산 규격 일기장 공책(13X19cm)에 기록되어 있다.
 
=== 시대상 및 사회상 ===
[[1883년]] [[1월 1일]]부터 [[1887년]] [[11월 24일]]까지의 일기는 [[한문]]으로, 1887년 11월 25일부터 1889년 12월 7일까지의 일기는 국문으로, 1889년 12월 7일 이후의 일기는 모두 영문으로 쓰여 있다. 나중에 누군가 자신의 일기를 들춰볼 것을 염려했던 [[윤치호]]는 결국 내용 비밀 유지 겸 자신의 부족한 [[영어]] 어휘력 공부를 겸하여 [[1889년]] [[12월 7일]]자 일기 부터는 영문으로 썼다. [[1889년]]과 [[1894년]] 사이의 일기에는 존경하는 미래씨에게 편지를 보내는 형식으로 종종 일기를 썼다. [[1880년]]대 초기 일본 유학 시절과 귀국 직후의 일기에는 [[메이지 유신]](明治維新) 이후 [[일본]] 사회의 변화 발전상과 [[김옥균]](金玉均) 등 인사들의 [[도쿄]] 체류 동향, 그밖에 일본 체류중인 한국인의 동향이 기록되어 있다. [[1883년]]~[[1884년]]의 국내체류 시기의 일기에는 국내외 정세, 그 중에서도 특히 미국공사관과 개화당 및 갑신정변에 관한 기록이 상세하다. 초기에는 [[조선 고종|고종]]과 [[명성황후]]에 대한 존경심과 기대, [[개화파]] [[김옥균]]과 [[박영효]] 등에 대한 기대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갑신정변]] 전후로 이들의 무모함을 지적하는 동시에 왕과 왕비에 대해서도 실망과 경계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1884년 말부터 1888년 말까지 중국유학 시기의 일기에는 상해의 대학생활과 당시의 중국사정 및 상해체류 한국인의 동정이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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