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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상 및 사회상 ===
[[1883년]] [[1월 1일]]부터 [[1887년]] [[11월 24일]]까지의 일기는 [[한문]]으로, 1887년 11월 25일부터 1889년 12월 7일까지의 일기는 국문으로, 1889년 12월 7일 이후의 일기는 모두 영문으로 쓰여 있다. 나중에 누군가 자신의 일기를 들춰볼 것을 염려했던 [[윤치호]]는 결국 내용 비밀 유지 겸 자신의 부족한 [[영어]] 어휘력 공부를 겸하여 [[1889년]] [[12월 7일]]자 일기 부터는 영문으로 썼다. [[1889년]]과 [[1894년]] 사이의 일기에는 존경하는 미래씨에게 편지를 보내는 형식으로 종종 일기를 썼다. [[1880년]]대 초기 일본 유학 시절과 귀국 직후의 일기에는 [[메이지 유신]](明治維新) 이후 [[일본]] 사회의 변화 발전상과 [[김옥균]](金玉均) 등 인사들의 [[도쿄]] 체류 동향, 그밖에 일본 체류중인 한국인의 동향이 기록되어 있다. [[1883년]]~[[1884년]]의 국내체류 시기의 일기에는 국내외 정세, 그 중에서도 특히 미국공사관과 개화당 및 갑신정변에 관한 기록이 상세하다. 초기에는 [[조선 고종|고종]]과 [[명성황후]]에 대한 존경심과 기대, [[개화파]] [[김옥균]]과 [[박영효]] 등에 대한 기대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갑신정변]] 전후로 이들의 무모함을 지적하는 동시에 왕과 왕비에 대해서도 실망과 경계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1884년 말부터 1888년 말까지 중국유학 시기의 일기에는 상해의 대학생활과 당시의 중국사정 및 상해체류 한국인의 동정이 기록되어 있다.
 
[[파일:Yun Chi-ho's letter by 1919.03.01.png|썸네일|왼쪽|130px|[[1919년]] [[3월 1일]]자 윤치호 일기]]
 
[[1888년]] [[11월]]부터 [[1893년]] [[10월]]까지 미국유학 시대의 일기에는 사소한 개인 이야기, 고국의 부모와 서신을 주고받은 것, [[밴더빌트 대학]](Vanderbilt)과 [[에모리 대학]](Emory)에서의 대학생활과 신앙활동 및 강연활동 등에 대한 이야기 미국의 문명발전과 인종차별문제, 현지 성경 설교 순회강연 시 만나본 미국인들의 생활, 일부 목회자들의 음주와 사창가 출입 등이 기록되어 있다. 특히 [[미국]] 유학 중 [[윤치호]]는 [[아프리카]]에 [[기독교]] 선교를 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주말 오전 예배때 흑인들을 모조리 박멸해버려야 된다는 어느 남부 감리교 목사의 이중적인 발언들을 듣고 충격을 받기도 했다.
 
1893년 11월부터 1894년 12월까지 [[청나라]] 체류 시기의 일기에는 자신의 혼인과정, 중국인들의 생활상과 위생 상태, 김옥균의 암살전후 상황, [[상하이]]의 [[조선]] 총영사관 직원들 및 [[민영익]] 등 상하이 체류자들의 활동 상황, [[영국]]과 유럽 열강의 [[청나라]] 공략에 대한 간단한 소문들, [[청일전쟁]]의 경과 및 한국, 중국, 일본, 미국, 만주, 베트남, 러시아 등의 정세 등이 언급, 기록되어 있다.
 
[[파일:Yun Chi-ho's letter by 1919.03.01.png|썸네일|왼쪽|130px|[[1919년]] [[3월 1일]]자 윤치호 일기]]
 
[[1895년]] [[1월]] 귀국 이후 [[1907년]]까지 국내활동 시기의 일기에는 국내 정치 사회 분위기와 갑오경장, 을미개혁, 을미사변, 아관파천의 전후 사정과 당시 부패하고 경직된 관리들의 태도, [[명성황후]] 암살 사건 전후의 정치상황,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 대관식 수행원 참석관계의 여행과정 및 [[독립신문]] 편집 참여와 [[독립협회]], [[만민공동회]] 등의 인권운동, 국권·민권운동의 전말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1895년]] 일기에는 주로 국내 관료들의 무능함과 부패함, 표리부동한 처신과 행동 등이 담겨져 있고, 언문을 사용할 것을 상주하자 나는 언문을 배우지 못했다는 [[김홍집]]외 일부 고관들의 반발, 개화파와 민권운동에 대한 모함을 하는 일부 관료들에 대한 의견이 담겨 있다. [[1896년]] 이후의 일기에는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를 무고하는 [[황국협회]] 및 [[조병식]] 을 비롯한 정부 대신들에 대한 비판, [[조선 고종|고종]]에 대한 경멸과 황실의 존재에 대한 회의감과 의심을 품게 되었다. 또한 그는 [[을미사변]] 당시의 일기와 이후의 일기에서 왕비 암살에 [[유길준]]을 비롯한 조선인 협력자들이 가담했음을 언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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