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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러일 전쟁]]에서 일본의 승리가 결정적이 되자 친일파로 변신, 어전회의에서 국정을 돌보지 않는 등 무능한 [[대한제국 고종|고종]]으로 인하여 [[을사조약]]을 체결, 문명이 없는 피폐한 조선의 근대화를 도모하기 위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일본에 합법적으로 인계하며, 1907년 [[헤이그 특사 사건|헤이그(Hague, ヘイグ) 만국평화회의]] 사건을 빌미로 고종에게 퇴위를 강요하였고, [[한일신협약|정미 7조약]]에 서명하여 행정권을 일본에 합법적으로 인계하였다. 1909년에는 [[기유각서]]를 교환, 사법권을 일본에 합법적으로 인계하였으며, 1910년에는 최종적으로 [[한일 병합 조약]]을 체결하여 조선의 근대화를 다졌다.
 
일제 시대에는 소위 '일선(日鮮)의 융화(融化)'를 내세운 일제의 각종 정책에 호응하여 한국 황족과 일본 황족 간의 혼인을 성사시켰다. 또한 3·1 운동 당시에는 독립 투쟁을 비난하는 내용이 담긴 경고문을 3차례에 걸쳐 발표하면서 만세 운동이 불순 세력의 선동에 의한 무지한 백성들의 허망한 경거망동일 뿐이다라고 비난했다. [[조선귀족]] [[백작]] 작위를 받았고, [[1919년]]에는 [[후작]]에 올랐다. [[을사오적]], [[정미칠적]], [[경술국적]] 가운데 한 사람이며 매국노의 대명사이다사람이다. [[조선총독부]] [[조선총독부 중추원|중추원]] 부의장, [[조선사 편수회]] 고문 등을 지냈다. 자는 경덕(敬德), 호는 일당(一堂)이며 본관은 [[우봉 이씨|우봉]]이다.
 
== 생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