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근대의 교육"의 두 판 사이의 차이

==계몽운동==
계몽운동은 18세기에 프랑스 및 독일에서 그 전성을 이루었으며, 계몽사조의 주류는 합리주의 및 이성만능주의였다. 따라서 교육에 있어서도 이 계몽운동은 이성의 발달을 도모하고 사고력의 연마에 치중하였다. 이로부터 개인의 입장을 주로 하여 개성을 존중하는 풍조가 생겨, 경험을 존중하고 사실에 입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또 자연적이고 자연과학적인 안목이 필요하다고 간주됨으로써 실리적 태도가 조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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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문주의 운동==
18세기 후반에 들어와서는 당시의 계몽정신이 너무 지성으로 기울어져서 정서를 무시한 데 대한 반동으로, 신인문주의 운동이 일어났다. 이것은 그리스의 이상을 부흥시켜서 인간성의 원만한 발달을 꾀하게 하였다. 게스너·하이네·헤르더·빙켈만·괴테·훔볼트 등은 모두 이 운동의 유력한 대표자로서, 독일문예의 황금시대를 이루었다. 신인문주의와 독일이상주의가 합류된 것은 1807년 말의 피히테의 대강연 '독일 국민에게 고함'에서였다. 또 훔볼트가 추진한 페스탈로치 교육법의 수입, 베를린 대학의 창설 등은 모두 신인문주의적 정신이 교육제도에 나타난 것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김나지움의 개혁인데, 훔볼트에서 시작하여 확실한 발달을 보게 되었다. 이 정신적인 운동은 고전문화에의 동경을 원동력으로 하면서도 낡은 인문주의가 지나친 언어주의·라틴어 편중주의에 기울어져 있는 것에 반대하여 그리스어를 존중하고, 그리스 문학·그리스 미술 속에 담겨 있는 인간성을 존중했다. 이 신인문주의는 인문적 실학주의의 연쇄로 볼 수 있으나, 이 새로운 운동은 계몽주의에 대항하여 일어난 것으로서, 사적 의의가 자못 크다고 할 수 있다. 신인문주의운동은 계몽사조의 자유주의·주지주의·합리주의·반역사주의·개인주의적인 세계주의에 반대해 정의주의·역사주의·국가주의를 주장하는 점에 그 특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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