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에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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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카이에타'''(Caieta)는 지중해를 내려다보는 작은 갑인 토레 디 올란도의 경사면에 자리잡고 있었다. [[스트라본]]의 기록에 따르면, 고대 가에타는 [[이오니아]] [[사모스 섬]]의 식민지였다고 한다. 스트라본은 그리스어 kaiétas에서 카이에타(Caieta)란 말이 기원했다고 언급하였다. kaiétas는 동굴을 뜻하는 그리스어인데, 아마도 다수의 항구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베르길리우스]]의 《[[아이아네스]]》 (트로이의 장군 아이네아스의 유랑을 노래한 서사시) (vii.1–9)에서 "카이에타"는 [[아이네이아스]] (다른 전설에서는 아스카니우스라고 불린다.)의 유모의 이름이었다고 한다. 여기 가에타 지역에 죽어 묻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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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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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의 가에타 ===
[[이탈리아의 통일]] 이후 [[제2차 세계 대전]]까지 가에타는 중요 항구로서 성장하였다. 옆 마을인 이탈리아의 통일(Risorgimento) 이후 떨어져나간 마을이자 여왕의 이름을 따 마을인 엘레나({{llang|it|Elena}})는 [[제1차 세계 대전]] 때 가에타와 다시 통합되었다. [[베니토 무솔리니]]는 [[캄파니아 주]] (예전 이름은 테라 디 라보로였다. 가에타가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복속되어 있던 곳이었다.)에 속했던 가에타를 이탈리아의 중앙의 주인 [[라치오 주]]로 배정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가에타는 무솔리니 및 나치 동맹군에게 있어서 전략적 요충지였다. 왕이 무솔리니를 해임한 후, 무솔리니는 가에타를 거쳐 [[폰차]] 섬의 감옥에 갇혔다. (폰차 섬의 감옥은 무솔리니가 예전에 정적들을 수없이 가뒀던 곳이었다.) 군중들이 대규모의 수송 행렬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이 날 당국은 가짜 공습 사이렌을 울렸다. 나중에 무솔리니는 [[그란 사소]]로 이송되었는데, [[독일]] 측이 이곳에서 무솔리니를 구출해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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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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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이 보기 ==
 
== 바깥 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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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가에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