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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메달|[[2012년 하계 올림픽|2012 런던]]|[[2012년 하계 올림픽 축구 남자|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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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용'''(庸誠誠庸, [[1989년]] [[1월 24일]] ~ )은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로서 포지션은 [[중앙 미드필더]]이다. 현재 [[스완지 시티 AFC|스완지 시티]] 소속으로 뛰고 있다. 팀보다 더 중요한 선수이다.
 
== 개요 ==
기성용은 [[전라남도]] [[광양시]] 출신으로 구룡 유치원, 강선초등학교, 발산중학교, [[금호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탄탄한 체구와 폭넓은 시야를 활용한 강력하고 정확한 롱킥이 [[스티븐 제라드]], [[사비 알론소]] 등과 닮았다. [[2012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해 10번째 한국인 프리미어리거가 됐다.
 
=== 오스트레일리아 유학 시절 ===
축구 감독인 아버지 기영옥으로 인해 축구를 시작한 그는 [[2001년]] [[오스트레일리아]]로 유학을 떠나, 5년 후 [[대한민국]]에 다시 돌아와 [[금호고등학교]] 축구부에 들어갔다.
기성용의 부모는 혹시 선수생활을 하다 부상을 당해 더 이상 축구선수로서의 삶을 살 수 없게 됐을 때, [[영어]]가 도움이 될거라 여겨 오스트레일리아로 유학을 보내 영어와 축구를 동시에 배우게 했다.
 
=== 클럽 경력 ===
==== FC 서울 ====
오스트레일리아 유학 후 대한민국으로 돌아와 [[2006년]] [[FC 서울]]에 입단하였으나, 그 해 단 한차례의 리그 경기에도 뛰지 못했다.
 
하지만 [[2007년]]부터 [[FC 서울]]에 [[셰놀 귀네슈]] 감독이 부임한 이후 경기 출전횟수를 늘리기 시작하였다. [[K리그 2007|2007 K리그]]에서 20경기에 출장, 하지만 공격 포인트를 쌓진 못했다. [[K리그 2008|2008 시즌]] 부상 후유증으로 시즌 초반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였으나 [[4월 2일]] [[수원 삼성 블루윙즈|수원 블루윙즈]]와의 컵대회 경기에서 선발 출전한 것을 시작으로 팀의 주전 미드필드로 활약하였고 [[8월]] [[대구 FC]]와의 경기에서 프로 데뷔 후 첫 골을 성공시켰다. 8월 29일 리그 24라운드에서 수원과의 원정 경기에서 후반 막판 극적인 결승골을 터뜨린 후 [[에마뉘엘 아데바요르]]가 [[2006년 FIFA 월드컵|독일 월드컵]]에서 하였던 세레머니와 비슷한 세레머니를 벌여 06년 월드컵 당시 우리나라의 골키퍼였던 [[이운재]]를 도발해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후일 [[송종국]]은 캥거루 세리모니를 하는 선수를 볼링공으로 쓰러트리는 세리모니를 기성용 앞에서 펼쳤다. 한편 절친한 팀 동료 [[이청용]]과 함께 비슷한 시기에 입지를 넓혀가기 시작하였다. 2008 시즌이 끝난 후 열린 시상식에서 있었던 시즌 베스트 11 투표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으며 베스트 11에 선정되었다. 또한 최연소 베스트 일레븐이 됐다는 사실로 눈길을 모으기도 했다. 그 전까지 최연소 베스트 일레븐은 1998년의 [[고종수]](당시 20살)였으나 기성용이 19살의 나이로 경신하게 됐다.
 
[[K리그 2009|2009 시즌]]을 앞두고 K리그 감독들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 가장 데려오고 싶은 선수에 선정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탐난다! 기성용 … 얼마면 되겠니?”|url=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0903012141176&sec_id=520101&pt=nv|출판사=스포츠경향|작성일자=2009-03-01}}</ref> 스코틀랜드 무대에서도 관심은 끊이지 않아서 결국 2009년 8월, [[스코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셀틱 FC]]가 새 시즌을 앞두고 전력을 보강하며 러브콜을 보내왔다. 그러나 이 때는 K리그 시즌이 한창 진행 중이었고, [[FC 서울]]에서는 앞서 주축 미드필더 [[이청용]]를 [[볼튼 원더러스]]으로 보낸 마당에, 기성용까지 팀을 이탈하면 전력에 큰 누수가 생길 것을 우려하였기 때문에 양 팀은 기성용이 리그 일정이 모두 종료된 이후인 [[2010년]] [[1월]]에 셀틱에 합류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8월 28일]], [[FC 서울]]이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기성용의 이적을 발표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FC서울 기성용, 내년 1월 셀틱 이적|url=http://www.fcseoul.com/news/news/news_view.jsp?seq=1803&tcd=news&pg=1|출판사=FC서울|작성일자=2009-08-28}}</ref> 기성용은 시즌 후반기에도 소속팀 FC 서울의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리그 3위 수성과 6강 플레이오프 진출에 힘을 보탰다.
 
==== 셀틱 FC ====
2010년 1월 17일 [[폴커크 FC]]와의 리그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러 좋은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후 주전 경쟁에 어려움을 겪어 경기 출전 기회가 줄어들자 이적 가능성을 암시하기도 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기성용, "WC 집중 후 이적 여부 심각히 고려"|url=http://sports.media.daum.net/cup2010/news/breaking/view.html?cateid=1172&newsid=20100604184103812&p=poctan|출판사=OSEN|작성일자=2010-06-04}}</ref> 그러나 [[2010년 FIFA 월드컵|남아공 월드컵]] 이후 경기 출전 횟수를 늘려가기 시작하였고 2010-11 시즌 중반 [[스콧 브라운]]이 부상으로 이탈한 사이 좋은 모습을 보이자 주전 미드필더로 도약하였다. 2011-12 시즌이 종료된 후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퀸즈 파크 레인저스]]로의 이적설이 불거졌으며 [[2012년 하계 올림픽 축구|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 획득으로 병역 혜택이 주어지자 [[아스널 FC|아스널]], [[풀럼 FC|풀럼]],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SSC 나폴리]] 등 빅 리그 유수의 클럽들이 영입 경쟁에 뛰어들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ref>{{뉴스 인용|제목=BBC방송, ‘기성용 놓고 빅리그 4개 구단 영입전’|url=http://sports.media.daum.net/worldsoccer/news/breaking/view.html?newsid=20120815130709191|출판사=스포츠한국|작성일자=2012-08-15}}</ref>
 
==== 스완지 시티 ====
[[2012년]] [[8월 24일]] [[프리미어리그]] [[스완지 시티 AFC|스완지 시티]]와 구단 사상 최고인 600만 파운드(약 108억원)을 기록하며 3년 계약을 체결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기성용, 스완지 시티 공식 입단…계약 기간은 3년|url=http://sports.news.nate.com/view/20120825n00388|출판사=스포탈코리아|작성일자=2012-08-25}}</ref> 그의 데뷔전은 [[2012년]] [[8월 29일]](한국시각), [[풋볼 리그 컵|캐피탈 원 컵]] [[반즐리 FC|반즐리]]와의 경기에서 선발출장하며 76분을 뛰며 팀의 3-1 승리를 이끌어냈다. 기성용은 [[2012년]] [[9월 1일]], [[선덜랜드 AFC|선덜랜드]]와의 3라운드 경기에서 후반 32분, [[미겔 페레스 쿠에스타|미추]]와 교체되어 15분 정도를 뛰면서 [[프리미어리그]] 데뷔전을 치르게 되었다.
 
=== 국가대표 경력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U-20 대표팀]]에 선발되었으며 [[2007년 FIFA U-20 월드컵]]에 참가하였다. [[2007년]] [[9월 8일]] [[바레인 축구 국가대표팀|바레인]]과의 경기로 첫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U-23 대표팀]] 경기를 치렀고, [[2008년 하계 올림픽 축구 남자부|2008년 하계 올림픽]]에 참가하여 뛰어난 기량을 발휘했다.
 
[[2008년]] [[9월 5일]] [[요르단 축구 국가대표팀|요르단]]과의 친선경기에서 데뷔하여, [[2008년]] [[9월 10일]]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북한]]과의 [[2010년 FIFA 월드컵]] 예선에서 [[A매치]] 2경기 만에 첫 [[A매치]] 득점을 올렸고,<ref>{{뉴스 인용|제목='19살 막내' 기성용, A매치 두 경기 만에 데뷔골 |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809102252432237&ext=na|출판사=마이데일리|저자=김종국|작성일자=2008-09-10}}</ref> 바로 다음 경기인 [[2008년]] [[10월 11일]] [[우즈베키스탄 축구 국가대표팀|우즈베키스탄]]과의 친선경기에서 두 번째 A매치 득점을 기록하였으며, [[2009년]] [[6월 6일]] [[아랍에미리트 축구 국가대표팀|아랍에미리트]]와의 [[2010년 FIFA 월드컵]] 예선에서 세 번째 A매치 득점을 성공시켰다. [[2010 FIFA 월드컵]]에서는 팀내 최연소 선수(당시 21세)로 참가, 모든 경기에 주전으로 나왔으며 [[그리스 축구 국가대표팀|그리스]]전과 [[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나이지리아]]전에서 두 번 모두 [[프리킥]]으로 [[이정수 (축구 선수)|이정수]]의 골을 도왔다.
 
[[2011년 AFC 아시안컵]]에서는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일본]]과의 준결승전 경기에서 페널티킥 선제골을 기록했지만, [[원숭이]]를 흉내내는 골 세레머니 때문에 국제적으로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AFC 日 위원 "기성용에게 징계 없을 것"|url=http://www.goal.com/kr/news/147/korea/2011/01/27/2325560/Url|출판사=골닷컴|저자=이용훈|작성일자=2011-1-27}}</ref>
 
[[2012년 하계 올림픽]]에서는 [[중앙 미드필더]]로 풀타임 기용되어 팀의 승리를 이끌었으며, 올림픽 대표팀의 동메달 획득과 3위 수성으로 병역 특례를 받았다. 특히 8강전인 [[영국]]전에서는 승부차기 마지막 키커로 나서 골을 기록하며 대한민국의 4강 진출을 이끌어냈고, 골닷컴 선정 올림픽 축구 Best11에 팀 동료 [[윤석영]]과 함께 이름을 올렸다. 올림픽에서 수비형 미드필더 역할을 했던것은 기성용의 파트너 [[박종우]]였다. 그가 있었기에 기성용도 편하게 공격전개를 할 수 있었다.
 
== 플레이 스타일 ==
정확한 롱패스가 장점이며, 뛰어난 패스능력과 조율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전진패스가 드물다. [[중앙 미드필더]]선수로서 수비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편이고 그런 이유로 가끔씩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기도 하지만, 전문적인 [[수비형 미드필더]]들에 비해서는 뛰어난 수비를 보이지는 못한다.
 
== 논란 ==
FC서울시절 경기력에 욕을 많이 먹은 기성용은 미니홈피에 답답하면 니들이 뛰던가 (답답뛰)를 적어 비난을 많이 받았다
[[2013년]] [[7월 4일]] 기자 [[김현회]]가 올린 칼럼에서 기성용이 비공개 SNS로 [[최강희 (축구인)|최강희]] 감독을 비난하는 말을 작성한 것이 드러나면서 많은 비난을 받고 있다. 그리고 축구 협회로부터 엄중 경고를 받았다.
 
== 그 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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