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서 (문헌학):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Chobot (토론 | 기여)
잔글 봇:인터위키 링크 6 개가 위키데이터Q1154424 항목으로 옮겨짐. 이동 완료.
125.128.162.20(토론)의 10362015판 편집을 되돌림
23번째 줄:
역사상 가장 유명한 위서는 [[콘스탄티누스의 기증]]이다. 이 문서는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교황]]에게 서로마 지역의 종교적·세속적 통치권을 바쳤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1440년]]에 로렌초 발라(Lorenzo Valla)가 위서임을 밝혀냈다.<ref>{{브리태니커|b08b4068a|발라}}</ref> 근대 역사학에서는 기독교의 구약 및 신약 성경의 각 편들이 실제로 성립된 연대 등을 밝혀 위서 여부를 가리기도 했다. [[중국]]에서는 한나라 시대부터 서적을 연구하는 훈고학이 발달하였는데, 훈고학을 통해서 [[진시황]]의 분서, 한자의 변화 등으로 일실된 유교 경전을 재구성하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실제 유학의 성인이 저술한 것이 아닌, 위작된 경전들이 성립되기도 하였다. [[청나라]] 시대에 발달한 고증학은 이러한 경전이나 금석문의 진위 판별에 많은 성과를 낳았으며 [[량치차오]], [[캉유웨이]], 구제강(顧頡剛) 등이 주도한 의고학파(疑高學派)는 철저한 실증을 통해서 많은 유교 경전이 위작되었음을 고증하기도 했다.<ref>캉유웨이, 《신학위경고(新學僞經考)》, 1891</ref>
 
한국에서 위서 시비로 가장 대표적인 것은 《[[환단고기]]》와《[[차문절공유사]]》이다. 《환단고기》는 1911년에 [[계연수]]가 편찬한 책이라고 하나 사료비판을 통해 실제 성립 연대가 1911년이 아님이 밝혀졌다. 주로 [[재야사학]] 계열에서 《환단고기》와 같은 위서가 많이 등장하였는데, 《[[규원사화]]》, 《[[단기고사]]》 등이 있다. 대부분의 재야사학 계열의 역사서는 역사학계에서 위서로 확정되어 실제 역사 연구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재야사학자 및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환단고기》 등의 사료를 민족의 역사로 추앙하고 있다.
 
《[[화랑세기]]》는 현재 위서 여부를 놓고 학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사료이다.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화랑세기》를 위서로 보고 있으나 [[이종욱]] 교수를 필두로 한 일부 학자들은 진서임을 입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