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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 = [http://ganggyeong.nonsan.go.kr/ 강경읍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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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읍'''(江景邑)은 [[대한민국]] [[충청남도]] [[논산시]] 서부에 있는 [[읍]]이다. [[논산천]], [[강경천]]이 논산평야를 가로질러 [[금강 (강)|금강]]으로 유입되는 곳으로, 수로과 육로를 잇는 큰 포구로 번성하였다. [[함경남도]] [[원산시]]에 있는 [[동해|동해안]]의 원산항과 더불어 '조선 2대 포구'로 불렸던 항구였고, 100여 척의 배가 드나들 정도로 큰 포구였다. 쌀을 비롯한 해산물 등의 집산이 활발하여
== 지리 ==
강경읍은 [[논산시]]의 서부에 위치하며 행정구역상 동쪽는 [[연무읍]]과 [[채운면]], 서쪽은 [[금강 (강)|금강]]과 [[부여군]] [[세도면]], 남쪽은 [[전라북도]] [[익산군]] 망성면, 북쪽은 성동면과 접하고 있다. 강경읍 주위에는 평야지대가 있어 곡창지대로서 알려지고 있다. 금강을 통해 [[황해]]로 나아갈 수 있어 강경포구는 유명한 수산항이었다. 강경포는 강폭이 400m에 달해 대형 선박의 출입이 가능했다.
[[계룡산]]과 [[대둔산 (충남/전북)|대둔산]]에서 발원한 금강의 지류들이 북서쪽으로 돌아 남쪽으로 흘러내려오다가 [[논산천]]에서 합류하고 논산천은 강경읍 부근에서 금강본류와 합류한다. 금강과 지류들은 [[논산평야]]의 젖줄 노릇을 하고 있고, 금강은 천혜적인 방위선인 동시에 교통수단이 되어 왔다.
== 역사 ==
[[File:Former Hanil Bank Ganggyeong branch bilding.jpg|
[[File:Former Kanggyeong Labor Union Office.png|
강경은 고려와 조선시대 [[충청도]] '''은진현(恩津縣)'''이었다. 강경은 [[금강 (강)|금강]]의 지류가 합류하여 [[서해]]로 연결되는 육로와 수로가 교차하는 평야 지대로서 [[백제]] 시대부터 많은 인구가 살고 있었다. [[대한제국]] 시기 수상 교통을 바탕으로 [[충청남도]] [[공주시|공주]], [[부여군|부여]]와 [[장항읍|장항]], [[군산시|군산]]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였다. 고려 중기 무렵에도 제주에서 미역, 고구마, 좁쌀을 실은 배들이 드나 들었고 중국의 무역선들도 비단, 소금 등을 싣고 무역로를 텄다. 한국의 3대 강인
17세기 말엽에 열린 강경천 주변의 하시장이 개설되었고, 19세기 말에 들어와서 대시장으로 크게 부각되었다. 1870년에 옥녀봉 동쪽 기슭에 상시장이 설시되면서 2대포구, 3대시장으로 발전하였다. 강경포에 형성된 시장은 [[대구광역시|대구]], [[평양]]의 시장과 함께 '조선 3대 시장'으로 불리며 '1평양, 2강경, 3대구'라는 표현을 만들어냈다. 강경포구는 전국 3대 시장으로서 조선시대부터 4일과 9일장이 열렸다. 채운면의 제방 밑에는 조선시대에 세워진 무지개 모양 돌다리인 [[미내다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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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5년: 익산군 망성면 작촌리 일부를 강경면에 편입
* 1931년 4월 1일: 강경읍으로 승격
* 1931년~1933년 : [[금강 (강)|금강]] 하류 개수공사 (논산천, 강경천 제방축조)
* 1936년 3월: [[채운면]] 제내리, 산양리, 삼거리, 신촌리 일부를 강경읍에 편입하여 행정구역 확장
* 1996년 3월 1일: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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