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마르첼리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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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첼리노는 《순교 열전(Martyrologium hieronymianum)》이나 《주교 목록(Depositio episcoporum)》 혹은 《로마 순교자 증언록(Depositio martyrum)》 그 어디에서도 언급되어 있지 않다. 《[[교황 연대표]]》에서 마르첼리노에 대한 기록은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마르첼리노의 행적이라는 문헌을 토대로 하고 있다. 《교황 연대표》에 의하면,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박해 기간 동안 마르첼리노는 체포되어 우상들에게 향을 올리라는 강요를 받아 그대로 따랐다. 하지만 풀려난 후에 곧바로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다시 기독교 신앙을 고백함으로써 몇몇 신자와 함께 순교하였다고 한다. 다른 문헌들 역시 마찬가지로 마르첼리노가 배교했었다는 사실을 말해주며, 아마도 이러한 행적 때문에 고대 전례력에 그의 축일이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5세기에 들어서면서 [[도나투스주의]]자인 [[콩스탕틴]]의 주교 페틸리아누스는 마르첼리노 교황과 그의 사제들이 교회의 거룩한 책들을 이교도들에게 넘겨 주고 거짓 신들에게 향을 올렸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히포의 아우구스티노]] 주교가 정면으로 반박하였다. 6세기 초에 위조된 [[시누에사]] 교회회의 기록에 따르면, 마르첼리노는 배교한 죄목으로 고발당해 교회회의에 출두하였지만, ‘주교는 누구에 의해서도 판결받을 수 없다(prima sedes a nemine iudicatur)’라고 주장하며 재판을 거부하였다고 한다. 《교황 연대표》에 의하면, 마르첼리노는 순교한 지 25일째 되는 날인 304년 4월 26일에 살라리아 가도에 있는 프리실라 묘지에 안장되었다고 한다. 반면 《리베리오 교황표》는 10월 25일이라고 기록하였다.
 
마르첼리노는 13세기에 [[교황 아나클레토]]와 더불어 4월 26일을 축일로 지정된 이래 [[로마 보편 전례력]]에 등장하고 있다.<ref name=CR>Calendarium Romanum (Libreria Editrice Vaticana 1969), p.121</ref>
 
한편, 마르첼리노 교황의 재위기간 중 301년 [[아르메니아]]는 [[티리다테스 3세]]에 의해 최초의 기독교 국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