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불교: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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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치스롱 데트산왕]](755~781)은 [[불교]]를 [[국교]]로 하고, 많은 [[승려]]들을 [[인도]]로부터 초빙했다. 이들 중에는 [[좌도밀교]](左道密敎) 비법에 능한 [[파드마 삼바바]](蓮華上坐師: 티베트 이름으로 파드마 쥰네){{.cw}}[[샨타라크시타]](寂護: 티베트 이름은 시바쏘) 등이 있었다. 이리하여 [[티베트]]의 [[불교]]는 [[인도 불교]] 가운데에서도 특히 성력숭배(性力崇拜) 경향이 강한 [[좌도밀교]], 즉 [[탄트라 불교]]가 고유신앙인 [[본교]]의 지반 위에서 발달하여 형성되었다.
 
티베트 불교는 '''라마교'''라고도 불린다. "[[라마 (호칭)|라마]](La­ma)"는 [[구루]](Guru), 즉 [[스승]](師)을 뜻하는데 [[불보|불]](佛){{.cw}}[[법보|법]](法){{.cw}}[[승보|승]](僧)의 [[3보]](三寶)에 [[법 (불교)|법]]을 전하는 [[구루|사]](師)를 더하여 [[4보]](四寶)라 하고, 여기에도 귀의한다. 이러한 특색을 외부에서 평하여 라마교라고 부르게 되었다.
 
[[10세기]]에 들어와서는, 티베트 불교가 받아들인 [[밀교 (불교)|밀교]]의 성적(性的) 요소를 배제한 [[까담빠]](카담파{{.cw}}[[:en:Kadampa|Kadampa]])가 성립되었고, 이들로부터 분리된 [[사키야빠]](사캬파{{.cw}}[[:en:Sakyapa|Sakyapa]])의 [[파스파]](1239~1280)는 티베트 불교(라마교)의 종교적 수장이 됨과 동시에 정치적 권력을 장악하여 [[법왕국가]]를 건설하였고 세력을 신장하였다. 이 무렵에 티베트 불교(라마교)는 [[티베트인]]과 동일한 [[유목 민족]]인 [[몽고인]] 사회에도 퍼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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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가 되면서 [[쫑카빠]](Tsong­ka­pa{{.cw}}쏭카파{{.cw}}宗喀巴: 1357~1419)에 의한 티베트 불교(라마교)의 개혁이 이루어져 현세의 이익을 비는 [[주술]](呪術)이 배척되고 [[계율]]의 준수가 강조되었다.<ref name="글로벌-쏭카파의 개혁">[[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종교·철학/세계의 종교/불 교/불교의 역사#쏭카파의 개혁|종교·철학 > 세계의 종교 > 불 교 > 불교의 역사 > 불교의 북전(北傳) > 쏭카파의 개혁]],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ref> 이 파는 [[라사]]의 동남쪽에 있는 [[가단사]](寺)를 근거로 하여 [[겔룩빠]](겔룩파{{.cw}}[[:en:Gelugpa|Gelugpa]]{{.cw}}黃帽派{{.cw}}황모파)라고 불렀으며, 종래 티베트 불교(라마교)의 [[닝마빠]](닝마파{{.cw}}Nyingma{{.cw}}紅帽派{{.cw}}홍모파)와 원시 [[본교]](Bön)와 구별되었다.<ref name="글로벌-쏭카파의 개혁"/>
 
[[계율]]을 중시한 [[겔룩빠]]는 [[대처]](帶妻)를 인정하지 않았으므로 [[윤회]](輪廻)에 의한 전생설(轉生說)로 후계자를 얻으려 하였다.<ref name="글로벌-쏭카파의 개혁"/> 뒤에 [[겔룩빠]]는 [[라사]]의 [[포탈라사]](寺)와 [[시가세]]의 [[타시룬포사]](寺)로 분열하여 [[쫑카빠]]의 두 명의 제자가 각각 [[라마 (호칭)|라마]]의 칭호를 가지고 이들 사찰들을 근거로 하여 [[법맥]](法脈)을 유지하였다.<ref name="글로벌-쏭카파의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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