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일본 프로 야구 재편 문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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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맹 분열==
[[9월 29일]] 새로운 구단의 가입 문제에 대해 연맹의 최고 고문 회의가 개최되고 이어이어서 30일부터는[[9월 30일]]부터는 구단 대표자 회의가 열렸다. 여기서 거인요미우리·주니치·다이요가 신규 가맹에 반대 입장을 보인 반면, 한신·한큐 브레이브스(현재의 [[오릭스 버펄로스]])·난카이·도큐 플라이어스(현재의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다이에이 스타스(이후 다이에이 유니온즈, 현재는 소멸)는 신규 가맹에 찬성했다. 1946년 연맹에서 "더 이상 구단 증가는 없다"라고 밝혔지만, 찬성 측의 5개 구단은 이미 상황이 달라졌다고 주장했다.
 
찬성 측 구단들을 모아 다수결로 강행 돌파하려고 했던 쇼리키는 "2개 구단의 참가를 인정하고 1리그 10구단을 목표로 한다"라는 맹약서를 정리해 노다 세이조 [[한신 전기 철도]] 사장의 서명을 받았다. 그러나 참여 희망이 잇따랐기 때문에 거기서 2구단을 선택(실질적으로는 마이니치와 나머지 한 구단)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고, 양자가 첨예하게 대립했기 때문에 쇼리키의 "1리그 10구단" 구상도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혔다. 그래서 찬성 측 5개 구단은 "양대 리그로 분열하고 마이니치는 같은 리그에 참여한다"는 새로운 협정을 맺었다. 이 협정에도 노다는 서명을 했다.
 
[[11월 12일]]에 전후 처음으로 메이저 리그의 [[AAA트리플 A]]팀인 샌프란시스코 실즈가 초대된 상태였는데, 손님을 맞이하는데 내부가 분열한분열되어 있는 것은 실례라고 하여 가맹 문제를 보류로 두고 일단 회의가 해산되었다.
 
그런데 친선 경기가 끝난 [[11월 22일]]에 열린 구단 대표자 회의에서 한신이 갑자기 동향을 바꾸었다. "양대 리그로 분열하지만 한신은 마이니치의 리그로 옮기지 않고 요미우리의 리그에 남는다는남는다"는 토가시 코이치고이치 구단 대표의 통보였다.
 
==새로운 구단과 선수 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