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일본 프로 야구 재편 문제: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Dmsgur499 (토론 | 기여)
32번째 줄:
 
== 잇따른 가맹 신청 ==
쇼리키 구상의 본래 목표였던 ‘점진적인 확대 노선’과는 달리 마이니치 가맹 사태가 표면화되면서 프로 참여를 노리고 있던 기업들에서 가맹 신청이 잇따랐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마이니치 신문, [[긴키 일본 철도]], [[교토 신문]], [[구마가이구미]], [[일본국유철도]], [[쇼치쿠]], [[마루하|다이요 어업]], [[나고야 철도]], [[서일본 철도]], [[서일본 신문]], [[세이부 철도]], [[구마가이 구미]], [[히로시마 도요 카프|히로시마]], [[벳푸 호시노구미]], [[RICCAR]] 등의 이름이 거론되었다<ref>《전술 한신 타이거스의 정체》 p.114</ref>(이들 중 현재까지 구단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히로시마와 세이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마이니치 신문이 9월 21일 정식적으로 가입 신청을 했지만 이에 앞서 9월 14일에는 긴키 일본 철도가, 9월 20일에는 서일본 철도가 각각 신청을 했다. 이후에도 24일 [[하야시카네 산업|하야시카네]], 28일에는 호시노구미와 히로시마가 가입 신청을 하면서<ref>《전술 신판 타이거스의 자라난 내력》 p.295</ref> 쇼리키 구상은 완전히 무너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