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헤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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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시의 기원은 분명하지 않지만 발굴 조사에서는 기원전 6000년 전의 주거 흔적이 발견되고 있다. 9세기에는 마을이 있었는데, 이 지역에서는 레이(Rey)가 가장 번성한 도시였으며, 테헤란은 주목받는 지역은 아니었다. 13세기, 레이가 몽골에 공격을 당하면서 테헤란에 피난하여 "레이 사람들의 테헤란" 등이라고 불렸다. 14세기, 테헤란은 이름이 알려진 도시였으며, [[1404년]], [[카스티야 왕국]]의 대사가 [[사마르칸트]]로 향하는 도중에 마을에 들렀는데, 이것이 서양인이 마을에 발을 디딘 최초이다. 이 시대의 마을에는 성벽이 없었다. 17세기에는 [[사파비 왕조]]의 지배자들의 주거도 만들어졌다. 타후마스부 1세는 시장과 성벽을 만들었다. 그러나 [[압바스 1세]]가 우즈벡과의 참전하기 위해 테헤란을 경우하게 되었을 때, 왕이 병들어서 그 후 왕이 싫어하는 도시가 되었다. 18세기, [[잔드 왕조]]의 [[카림 칸]]은 테헤란에 궁전과 하렘의 건설을 명령하였고, 정부 기관도 이전할 예정이었지만, 결국 시라즈로 이전하게 된다. 테헤란이 이란의 수도가 된 것은 [[1795년]], [[카자르 왕조]]의 [[모하마드 칸 아자르]]가 이곳에서 즉위한 이후부터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소련군과 영국군이 테헤란에 입성하였고, [[1943년]]에는 연합국 수뇌가 [[테헤란 회담]]을 가졌다. 전후, [[모하마드 레자 팔리비]]는 근대화를 추진하기 위해 고레스탄 궁전이나 오울드 테헤란 지역의 건물, 성벽과 성 등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하여 많은 건축물이 철거되어 재건축되고, 거리의 모습도 바뀌었다. 바자르도 절반 이하로 축소됐다. 이란 - 이라크 전쟁에서 스커드 미사일의 표적이 거듭되는 공습도 막대한 피해를 냈다. 동시에 테헤란에는 난민이 모여 혼잡을 빚었다. 이란 - 이라크 전쟁 당시 소련식의 집합 주택이 난립하면서 테헤란은 또한 역사적 건축물을 잃었다. 현재는 50층이 넘는 아파트 등 초고층 건물의 빌딩이 늘고있다늘고 있다. 높이 435m의 새로운 랜드 마크 밀라드 타워도 지어졌다.
 
== 지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