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희 (1949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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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뷰'''
영화배우 진도희는 동국대학교 재학시절 교내 연극의 여주인공으로 뽑히면서 알게 된 국립극단장의 권유로 MBC 공채 4기에 응시하여 5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김경아라는 예명으로 MBC 4기 탤런트가 되었다. 6개월 뒤 1972년 선배 탤런트 태현실의 권유로 배우 박노식(탤런트 박준규의 부친)의 감독 데뷰 작품인 '쟈크를 채워라'(1972년)에 주연으로 캐스팅 되면서 영화배우가 되었다.
 
 
'''춘추전국시대의 스타'''
 
이 후 진도희는 영화계의‘춘추전국시대’ 때 나오미, 홍세미 등과 함께 대스타 신인들의 물망에 올라 주연급 배우로 왕성한 활동을 하였다. '춘추전국시대'란 대한민국 영화사에 획을 그은 남정희-문희-윤정희 1세대 트로이카와 정윤희-장미희-유지인 2세대 트로이카 사이에 껴 있었던 1970년대 초반, 선두주자 없이 비슷한 인기를 갖고 있던 여배우들의 시대를 일컫는 기간이다. 이 시절 주요 배우들에는 진도희, 나오미(아이돌 가수의멤버 최혁준의 모친), 우연정, 최정민, 윤세희, 윤미라, 박지영, 윤연경, 전영, 오유경 등이 있다. 진도희와 함께 영화에 출연한 남자 배우들은 신성일, 신일용, 신영일, 박근형, 백일섭, 남궁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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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니저 김학훈'''
 
진도희의 메니저는 도금봉, 김혜정(동아그룹 최원석 회장의 전처), 윤정희(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처)를 담당했었던 김학훈이다. 그는 진도희를 당대 최고의 스타로 만들겠다는 야심으로 TV출연도 까다롭게 선별하여 오락 프로그램에도 자주 출연하지 못하게 할 만큼 공을 들였다. 그는 진도희를 간혹 유명인들과 TV에 출연하여 기타를 연주하거나 동시대 톱 탤랜트들과 시사 토크 프로그램에서 인터뷰를 하는 정도만 허락했던들인 엄격한 메니저였다. 이후 진도희의 열애설과 관련한 갑작스러운 영화 활동 중단 선포에 충격을 받고 당대 유명 여배우들과의 왕성했던 메니저 활동에서 영구 은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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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적'''
 
1973년 정인숙 사건을 바탕으로 한 송상옥 원작의 [죽어서 말하는 여인]에 캐스팅 되었으나 갑작스런 하길종 감독의 국토개발징집으로 인해 고영남 감독으로 바뀌면서 영화가 처음의 시나리오와 다르게 만들어지자 영화계에 실망을 느껴느끼고 잠적해버렸다침체기를 겪게 되었다. 그러자 와병설, 재벌 2세와의 결혼설 등 숱한 추측성 기사가 주간지를 장식했다. 실제로 진도희가 왕성한 영화 활동을 하던 중 갑작스럽게 은막에서 잠적을 한 이유들가장 중에는이유는 당시 유학파 금융재벌 3세와의 열애가 실제로사실이었기 작용했다때문이었다. 임신으로 인해 영화계를 떠나 있는 동안 그와 딸을 하나 두었으나 오래 전에 헤어진 뒤 한 때는 아이의 양육권 마저도 포기했었다고 전해진다. 하길종 감독은 제대 후 영화 <바보들의 행진>과 <별들의 고향(속)>으로 화려하게 컴백하면서 진도희의 잠적을 몹시 아쉬워했다고 한다.
 
 
'''이후 동정'''
 
진도희는 3년이란 짧은 기간 동안 스타의 반열에서 수많은 영화에 출연 하였으며 수십 장의 잡지 표지 모델, 각종 패션 쇼 특별 출연 등 쉴 틈 없이 활동을 하던 중 급작스럽게 잠적하였다. 그 와중에 아이를 출산하고 3년 만에 잠시 다시 잡지에 얼굴을 비친 것을 마지막으로 영화계에서 사라졌었다. 그 후 외식사업과 무역회사 중역으로 미국을 오가면서 바쁘게 지내던 1982년, 배우시절 친하게 지내던 지인이 제작하는 영화에 같이 투자를 하며 주연으로 출연하게 되어 8년 만에 주간지에 오르내렸다. 허나 머지 않아 미국 뉴욕으로 도미하여 배우로서의 삶을 드러내지 않으며않았으며 중년부터 종교에 심취하기 시작하였다.
 
 
'''“젖소부인” 논란'''
 
영화배우 출신으로 성인 영화 산업에 종사하는 한지일은 70년대 톱스타로 부상했던 ‘진도희’의 예명을 의도적으로 자신의 기획사 소속의 에로배우에게 붙여주며 물의를 빚었다. 한지일은 1995년 ‘젖소부인’ 시리즈의 에로배우로 활동한 김은경(본명)에게 진도희란 예명을 사용하게 하며 ‘원조’‘원조’여배우 진도희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그녀의 가족들에게 사회적으로 불편을 끼쳤다. 실제 ‘원조’실제‘원조’ 진도희는 1995년 ‘젖소부인’ 진도희가 인기를 얻기 시작할 무렵무렵부터 원로배우 윤일봉을 통하여 한지일 측에 예명 사용 중단을 요청했다. 그러나 에로배우 진도희와 한지일은 "젖소부인" 시리즈의 인지도 상승에 힘 입어 무시하였다. 한지일은 2005년 8월 EBS에서 영화배우 진도희의 70년대 영화가 방영 된 후 시청자들의 문의와 반향이 따르자 뒤늦게 “예명의 주인이었던 영화배우 진도희씨에 대한 사죄의 마음”을 전했다. 현재 각 포털 사이트들은 에로배우 진도희를 1순위로 지정해놓고 있으며 진도희 검색어를 19금과 연결시켜 놓아서 한국영화사에 등재되어 백상예술상까지 수상했던 70년대 여배우와 가족들에게 여전히 명예 훼손적인 피해를 안겨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