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희 (1949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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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뷰'''
영화배우 진도희는 동국대학교 재학시절 교내 연극의 여주인공으로 뽑히면서 알게 된 국립극단장의 권유로 MBC 공채 4기에 응시하여 5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김경아라는 예명으로 MBC 4기 탤런트가 되었다. 6개월 뒤
'''춘추전국시대의 스타'''
이 후 진도희는 영화계의‘춘추전국시대’ 때 나오미, 홍세미 등과 함께 대스타 신인들의 물망에 올라 주연급 배우로 왕성한 활동을 하였다. '춘추전국시대'란 대한민국 영화사에 획을 그은 남정희-문희-윤정희 1세대 트로이카와 정윤희-장미희-유지인 2세대 트로이카 사이에 껴 있었던 1970년대 초반, 선두주자 없이 비슷한 인기를 갖고 있던 여배우들의 시대를 일컫는 기간이다. 이 시절 주요 배우들에는 진도희, 나오미(아이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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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니저 김학훈'''
진도희의 메니저는 도금봉, 김혜정(동아그룹 최원석 회장의 전처), 윤정희(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처)를 담당했었던 김학훈이다. 그는 진도희를 당대 최고의 스타로 만들겠다는 야심으로 TV출연도 까다롭게 선별하여 오락 프로그램에도 자주 출연하지 못하게 할 만큼 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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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적'''
1973년 정인숙 사건을 바탕으로 한 송상옥 원작의 [죽어서 말하는 여인]에 캐스팅 되었으나 갑작스런 하길종 감독의 국토개발징집으로 인해 고영남 감독으로 바뀌면서 영화가 처음의 시나리오와 다르게 만들어지자 영화계에 실망을
'''이후 동정'''
진도희는 3년이란 짧은 기간 동안 스타의 반열에서 수많은 영화에 출연 하였으며 수십 장의 잡지 표지 모델, 각종 패션 쇼 특별 출연 등 쉴 틈 없이 활동을 하던 중 급작스럽게 잠적하였다. 그 와중에 아이를 출산하고 3년 만에 잠시 다시 잡지에 얼굴을 비친 것을 마지막으로 영화계에서 사라졌었다. 그 후 외식사업과 무역회사 중역으로 미국을 오가면서 바쁘게 지내던 1982년, 배우시절 친하게 지내던 지인이 제작하는 영화에 같이 투자를 하며 주연으로 출연하게 되어 8년 만에 주간지에 오르내렸다. 허나 머지 않아 미국 뉴욕으로 도미하여 배우로서의 삶을 드러내지
'''“젖소부인” 논란'''
영화배우 출신으로 성인 영화 산업에 종사하는 한지일은 70년대 톱스타로 부상했던 ‘진도희’의 예명을 의도적으로 자신의 기획사 소속의 에로배우에게 붙여주며 물의를 빚었다. 한지일은 1995년 ‘젖소부인’ 시리즈의 에로배우로 활동한 김은경(본명)에게 진도희란 예명을 사용하게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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