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임: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편집 요약 없음
18번째 줄:
 
중국의 대표적인 정사서들 중 하나인 《[[자치통감]]》에 의하면 장임이 죽은 시기는 [[213년]]으로 방통이 [[214년]] 여름([[4월]]로 추정)에 낙성에서 유시(눈 먼 화살)에 맞아 죽은 시기와는 1년이나 차이가 나므로 [[낙봉파 전설]]은 사실이 아니라 소설 《[[삼국지연의]]》의 저자 [[나관중]]이 창작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나관중은 방통의 죽음에 신비한 색상을 덧칠하기 위하여 주인에게 해를 끼치는 적로마로 바꾸어 타고 낙봉파란 곳에 이르게 했던 것이다. 결국 방통의 죽음을 통하여 농후한 숙명론적 사상을 주입시키고 있다.
 
이러한 나관중의 필치에 따라 후세 사람들은 사천(四川) 덕양현(德陽縣) 나강진(羅江鎭) 부근의 험요한 지점에 낙봉파라는 지명을 새로 만들었다.
 
[[장효범]](張曉帆)은 「낙봉파를 방문하고(訪落鳳坡)」란 글에서, ‘이곳은 원래 낙봉파라고 부르지 않았는데, 훗날 방통의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옴으로 인해 사람들이 이렇게 부르기 시작했다.’라고 하였다.
 
오늘날 전하는 낙봉파라는 지명은 후세사람들이 억지로 갖다 붙여 생겨난 허위 지명임을 말해준다.
 
참고로 중국 정사서는 물론이고 [[명나라|명대]]에 쓰여진 삼국지연의 이전의 중국 삼국시대를 소재로 한 창작물들에도 '낙봉파 전설' 은 등장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