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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대군은 모신(謨臣) [[권람]]을 통하여 당시 [[경덕궁]]직으로 있던 [[한명회]]를 얻고, [[한명회]]를 통해 다시 [[홍달손]](洪達孫) · [[양정 (조선)|양정]](楊汀) 등의 유능한 무인(武人) 30여 명을 포섭하여 기회를 엿보았다. [[한명회]]는 세상을 읽는 능력이 있는 인물로 [[수양대군]]의 책사로 활동한다. 불우한 처지에 있던 [[한명회]]와 [[권람]]은 왕권의 추락과 신권의 막강함과 사회 혼란을 이유로 들어 정변의 당위성을 역설하였다.
 
먼저 단종을 협찬해 오던 3공(公) 가운데서 가장 지용(智勇)을 겸비한 김종서를 제거하고자, [[1453년]](단종 1) 음력 10월 무사를 이끌고 김종서의 집을 습격하여 그를 죽인 뒤, 김종서가 모반하므로 죽였는데 일이 절박하여 사전에 임금께 아뢸 여가가 없었다고 상주하였다. 곧 왕명을 빌어 신하들을 소집, 미리 계획했던 대로 영의정 황보인·이조판서 [[조극관]](趙克寬)·찬성(贊成) [[이양]](李穰) 등 반대파 중신(重臣)을 궐문에서 죽이고, 좌이정[[좌의정]] [[정분]](鄭苯)·[[조수량]](趙邃良 : 조극관(趙克寬)의 아우) 등을 귀양 보냈다가 이어 죽였다. 한편 김종서 등의 목을 베어 매달고 그 자손을 주살(誅殺)하였으며 이어서 [[안평대군]]이 김종서 등과 통했다고 하여 그를 강화도에 귀양 보내서 뒤에 사사(賜死)하였다.
 
=== 선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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