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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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아버지는 익주에서 사우종사(師友從事)를 역임한 초□(譙𡸫)<ref>𡸫([[파일:초영시.png]])은 음이 알려지지 않은 글자이다. 譙𡸫의 자는 '''영시'''(榮始)이기 때문에, 대개 '''초영시'''(譙榮始)라고 대체하여 부른다.</ref>이다. 초주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형과 함께 살았으며, 성장한 이후 학문에 정진했고 자신의 가난한 집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성격은 진실되어 꾸미지 않는 성격이었다고 한다.
 
[[220년]] [[조비]](曹丕)가 [[후한 헌제|헌제]](獻帝)에게 선양을 받고 [[위 (삼국)|위나라]]를 세웠을 때 익주에서는 헌제가 해를 당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이에 [[유비]](劉備)의 신하들이 황제로 추대하고자 했으며 초주는 [[황권]](黃權) 등의 여러 신하들과 함께 황제에 즉위하여 [[한나라]]의 뒤를 이을 것을 청하는 글을 올렸다. 이로 인해 [[유비]]는 [[221년]] 4월 제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