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나라 (춘추시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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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진 분립 ===
문공(文公) 때부터 실정(失政)하기 전까지 계속 천하의 패권을 놓고 초나라와 겨루었다. 또한 임금이 경들을 중용하여 나라를 다스리면서 점차 경들의 세력이 진나라에서 강해졌다.
[[진 문공|문공]](文公) 이후부터 임금이 경들을 중용하여 나라를 다스리면서 점차 경들의 세력이 진나라에서 강해졌다. [[진 경공]]은 자기 시절에 가장 강력한 씨족인 조씨를 거세하였고, [[진 여공]]은 조씨를 대신하여 강성해진 극씨를 몰락시키는 등 경들의 세력을 약화하고자 했으나 순씨와 난씨의 반격으로 제거당했다.
 
경공(頃公)이 실정(失政)하면서 진나라 공실은 나라를 다스릴 능력을 잃었고 본격적으로 경들 간의 세력 투쟁이 시작되었다.
[[진 도공]]은 몇 집안을 일부러 제거하지 않고 어느 한 집안만 중용하지도 않으면서 경들의 세력 간 균형을 맞춰나갔으나, [[진 평공]] · [[진 경공]]이 실정하면서 진나라 공실은 나라를 다스릴 능력을 잃었고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 본격적인 경들 간의 세력 투쟁이 시작되었다. 여기까지 경 집안들 간의 권력 전환 과정에서 임금 주도로 제거된 집안이나 경들 간의 싸움에서 제거된 집안 중 조씨와 선씨만이 공실 지파가 아닌 반면(그나마 조씨는 부활), 호씨 · 난씨 · 극씨 등 공실 지파들은 일찍 강성했다가 다른 세력의 질시를 받아 먼저 제거되었다. 결국, 내내 약한 가문이면서도 경 한 자리는 유지한 한씨를 제외하면 공실과 혈연 관계가 없는 집안들이 진나라의 실권을 쥐었다. 이 과정에서 일단 지씨(智氏), 조씨(趙氏), 한씨(韓氏), 위씨(魏氏), 범씨(范氏), 중항씨(中行氏)가 살아남아 진나라를 다스려, 진나라는 이때 사실상 경들이 다스리는 여섯 나라와 미약한 공실 직할령으로 쪼개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BC경들의 497년이세력 되자투쟁 과정에서 조씨(趙氏), 위씨(魏氏), 한씨(韓氏), 지씨(智氏), 범씨(范氏), 중행씨(中行氏)만이 남아 다시 투쟁하였다. 범씨와 중행씨가 반란을 일으키자 지씨의 당주인 [[지백요]](智伯瑤)의 주도로 한(韓), 위(魏), 조(趙)의 당주들과 함께 범씨와 중항씨의중항씨를 영토를진나라에서 분할해축출하여 제나라로 몰아내고 그 땅을 각각 나눠 차지해 버린다. 그리고 지씨는 35대그러자 군주임금인 [[진 출공 (춘추)|출공]](出公)이 노하여 삼환과 전씨에게 지백요, 한호, 위구, 조앙을 죽여달라는 문서를 보냈다가 오히려 삼환과 전씨가 진출공이 그런 문서를 보내왔다는 문서를사실을 보내는알리는 바람에 진출공은오히려 살해당한다.공격당해 제나라로 축출되었다.
BC 458년 여섯 명의 귀족 사이에도 갈등이 생기고 그 와중에 범씨와 중항씨가 반란을 일으킨다. 이로 인해 나머지 4명의 당주들이 그들을 공격하여 그들을 영토 밖으로 밀쳐냈다.
 
[[기원전 403년]]에 [[조나라|조]], [[위 (전국)|위]], [[한나라 (전국시대)|한]] 의 세 나라로 분할되었다. 이 분할로 전국시대가 시작된다. 하지만 그때도 진나라는 아직 존재하였다.
BC 497년이 되자 지씨의 당주인 [[지백요]](智伯瑤)의 주도로 한(韓), 위(魏), 조(趙)의 당주들과 함께 범씨와 중항씨의 영토를 분할해 차지해 버린다. 그리고 지씨는 35대 군주 [[진 출공 (춘추)|출공]](晉出公)이 삼환과 전씨에게 지백요, 한호, 위구, 조앙을 죽여달라는 문서를 보냈다가 오히려 삼환과 전씨가 진출공이 그런 문서를 보내왔다는 문서를 보내는 바람에 진출공은 살해당한다.
 
정공(靜公) 2년에 삼진에 의해 멸망당하고 정공은 순(純) 땅으로 폐출된다.
이후에 지(智)의 당주 지백요(智伯瑤)가 한(韓), 위(魏), 조(趙)의 당주에게 영토를 나누어 달라는 제의를 하게 된다. 그 중 조의 당주 [[조 양자]](趙襄子)만이 영토를 주기를 거부한다. BC 455년 지(智)의 당주 지백요(智伯瑤)는 자신의 제의를 거절한 조(趙)의 당주 조양자(趙襄子)를 치기위해 한의 당주 [[한 강자]](韓康子)와 [[위 환자]](魏桓子)에게 연합을 요청한다. 조양자는 자신의 옛 성인 진양성(晋陽城)으로 들어가 백성들과 힘을 합쳐서 지백요와 그의 연합군에 대항했으나 사태가 매우 위급한 지경에 놓였다.
 
이때 조양자의 가신인 장맹담(張孟談)은 한강자와 위환자에게 찾아가 면담하면서 지백요를 배반하기를 설득한다. 결국 조양자는 두 당주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여 지백요의 진영을 치게 되었고 지백요는 사로잡혀 죽게 된다. 이리하여 진나라는 기원전 403년에 [[조나라|조]], [[한나라 (전국시대)|한]], [[위 (전국)|위]]의 세 나라로 분할되었다. 이 분할로 전국시대가 시작된다. 하지만 그때도 진나라는 살아 있었다. 그때의 군주는 37대 [[진 유공 (춘추)|유공]](晉幽公)이었고 몇 년 뒤 [[진 열공 (춘추)|열공]](晉烈公) 대에는 위, 한, 조가 정식 국가가 된다. 그렇게 두 마을만 다스리던 진나라 왕실은 [[진 정공 (춘추, 희구주)|정공]](晉靜公) 대에 평민으로 강등당해 멸망한다.
 
군주에 대해 진나라는 당숙우에게 봉한 나라로 섭을 거쳐 몇대 후 진정후대부터 조작이 아님을 믿을 수 있다. 활동, 재위 기간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진정후 17년은 공화 원년으로 진 정후, 진 이후, 진 헌후를 거쳐 구, 성사에 도읍을 모두 내려준 진 목후가 즉위한다 그 후 진후 상숙을 거쳐 진 문후, 진 소후, 진 효후, 진 악후, 진 애후, 소 자후, 진 민후대까지 성사의 후손과 내분이 일어나는데 성사의 손자 칭이 진 민후를 죽이고 군위를 탈취하니 그가 진 무공이다.
 
[[진 무공 (춘추)|무공]], [[진 헌공 (춘추)|헌공]], [[진 혜공 (춘추)|혜공]], [[진 회공 (춘추)|회공]]을 거쳐 [[진 문공]]이 패자로 오른 후 [[진 양공 (춘추)|양공]], [[진 영공 (춘추)|영공]], [[진 성공 (춘추)|성공]], [[진 경공 (춘추)|경공]], [[진 여공 (춘추)|여공]], [[진 도공 (춘추)|도공]], [[진 평공 (춘추)|평공]], [[진 소공 (춘추)|소공]] 후 [[진 경공 (춘추)|경공]]대부터 약해진다. 그 후 [[진 정공 (춘추)|정공]], [[진 출공 (춘추)|출공]], [[진 애공 (춘추)|애공]] 후 [[진 유공 (춘추)|유공]]부터 신강, 곡옥 두 마을 만 다스린다.
어느 날 진 유공이 부녀자를 간음하며 밤에 도성 밖을 돌아다니다가 강도를 만나 살해당하고 만다. 그 후 [[위 문후]]가 아들 지를 군위에 올리니 그가 [[진 열공 (춘추)|열공]]이다 진 열공 후, [[진 효공 (춘추)|효공]]을 거쳐 [[진 정공 (춘추, 희구주)|정공]] 대에 멸망한다.
 
== 역대 군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