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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여장은 세계적으로 어느 문화나 사회의 역사 기록에 등장하며, 그 이유는 제각기 다 달랐다. [[고대 그리스]]의 영웅 [[아킬레스]]는 [[트로이 전쟁]]에 참전하면 반드시 전사할 것이라는 예언을 불길하게 여긴 어머니가 그가 전쟁에 나가는 것을 막고자 여장을 시켜 딸들 사이에 숨겨두었다는 이야기가 [[그리스 신화]]에 전하고 있다. [[고대 로마]]에서도 『사튜리콘』 등이 존재했으며 성풍속으로서 [[소년]]이 여장을 하고 성매매를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고대 중국에서도 이러한 젊은 남자나 청소년이 여장을 하고 성매매에 나서는 일이 성행했는데, [[전족]]이 여성의 일반적 풍속이 되었던 [[청나라|청]] 시대에도 교묘한 위장으로 전족한 듯한 외모를 갖추어 여장한 남자가 많았다고 한다.

동양에서는 일본의 경우 [[조몬 시대]]에서 [[야요이 시대]]까지 남녀의 복장에 뚜렷한 구별이 서있지 않았는데, 《고사기》와 《일본서기》에는 [[야마토타케루|야마토 다케루노 미코토]](倭健命)가 여장하고 [[구마소]](熊襲)를 진압했다는 이야기를 전하는 등 일본에서의 여장의 기원은 상당히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헤이케 이야기(平家物語)》에도 12세기 말인 [[지쇼]](治承) 4년([[1180년]])에 헤이케(平家) 타도의 영지를 전국의 겐지(源氏)들에게 내리고 헤이케에 쫓기는 몸이 된 [[모치히토 왕|다카쿠라노미야]](高倉宮)가 가신 하세베노 노부쓰라(長谷部信連)가 여장하고 탈출할 것을 진언했다고 적고 있으며, [[미나모토노 요시쓰네]](源義経)도 [[무사시보 벤케이|벤케이]](弁慶)를 고조(五条)의 다리에서 맞닥뜨렸을 때 여장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오닌의 난]] 이후의 일본 군담소설에서도 적을 속이기 위한 목적으로서 여장 피신이 자주 언급된다. 헤이안 시대(平安時代)에는 또한 여인의 출입이 제한되어 있는 사찰에서 승려가 「치고(稚児)」라 불리던 소년을 여장시켜 여성 대신, 으로 상대하는 일이 빈번히 이루어졌는데 이것은 이후 일본에서 [[남색]](男色)과 같은 [[동성애]](同性愛) 문화의 원점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에도 시대]](江戸時代)에는 [[가부키]](歌舞伎)에서 남자로서 여자를 연기하는 온나가타(女形) 등, 여장한 소년 배우가 몸을 파는 형태의 온가차야(陰間茶屋)가 무가(武家) 등의 상류 계급 뿐 아니라 서민 계급에서도 유행하는 등 일본에서 여장은 남색 ・ 주도(衆道) 문화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민속학적인 관점에서, 어린아이가 요절하는 경우가 많았던 옛날에는 태어난 아들을 소녀처럼 여장시켜 키우거나 남자아이를 해치는 악령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유년기부터 여장을 시키는 풍습도 존재하였는데, 이것은 [[쇼와 천황]] 등 예전의 일본 천황가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존재하였다. 유럽의 [[귀족]]들은 유년기에 요절하는 것을 막기 위해 여장을 하였다. 대표적인 예로 [[찰스 2세]], [[루이 15세]]가 어린 시절에 여장을 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 개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