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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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장헌대왕실록'''》(世宗莊憲大王實錄)은 [[
== 편찬 경위 ==
[[조선 세종|세종]]이 승하한 2년 뒤인 [[조선 문종|문종]] 2년([[1452년]])부터 편찬하기 시작해, 2년 뒤인 [[조선 단종|단종]] 2년([[1454년]])에 완성되었다. [[김종서]], [[황보인]], [[정인지]]가 총재관으로 편찬을 시작하였으나, [[1453년]]에 [[계유정난]]으로 앞의 두 사람이 피살되면서 [[정인지]]가 나머지의 편찬을 총괄하였다.
세종의 재위 기간이 길고, 사료도 방대하여 많은 사람이 편찬에 참여하였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이계전]], [[최항]], [[박팽년]], [[하위지]], [[성삼문]], [[신숙주]], [[양성지]], [[유성원]] 등으로 총 편수관 4인과 기주관 23인, 기사관 25인 외에도 많은 사자관이 편찬에 참여하였다.
* 128 ~ 135권은 "오례(五禮)"로 조선왕조의 국가의례를 집대성한 것이다.▼
* 136 ~ 147권은 "악보(樂譜)"로 궁중 음악을 기록한 것이다. [[정간보]]를 사용하였다.▼
* 148 ~ 155권은 "지리지(地理志)"로 일찍이 세종 때 작성된 [[신찬팔도지리지]]를 토대로 한 것이다.▼
* 156 ~ 163권은 "[[칠정산]](七政算)"으로 역법을 다루었다.▼
분량이 방대하여 처음에는 한벌만 마련하여 [[춘추관]]에 두었다가, [[조선 세조|세조]] 12년([[1466년]])에 양성지의 건의로 이미 편찬된 《[[문종실록]]》과 함께 활자로 인쇄하기 시작하였으며, [[조선 성종|성종]] 3년([[1472년]])에 3부의 인쇄를 마쳤다. 이후 충주와 전주, 성주의 세 사고에 보관하였으나 이후 [[임진왜란]]으로 전주 사고본을 제외한 두 사고본과 춘추관본이 소실되었다. [[조선 선조|선조]] 말년에 다시 인쇄하여 여러 사고에 봉안토록 하였다.
{{조선왕조실록}}▼
== 내용 ==
《세종실록》은 다른 실록과는 달리 편년체의 기사 외에도 많은 ‘지’(志)를 함께 담고있다. 그 구성은 다음과 같다.
* 1권부터 127권까지는 편년체의 기사이다.
== 같이 보기 ==
* [[조선 세종]]
* [[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
[[분류: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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