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알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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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65년 탈해왕이[[탈해왕]]이 밤에 금성(金城) 서쪽 시림(始林)의 수풀 속에서 닭 울음 소리를 듣고서 신하 호공(瓠公)을 시켜 가보게 하였다. 금빛의 작은 함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고 흰 닭이 그 밑에서 울고 있다고 호공이 보고하자, 왕이 직접 가서 함을 열어보니 용모가 아름다운 사내아이가 나왔다. 이때부터 시림을 계림(鷄林)이라 하고 아이는 금함에서 나왔으므로 성을 김씨라 하였다.
 
[[삼국사기]]》 <미추왕조>에는 알지가 세한(勢漢)을 낳고 세한이 아도(阿道), 아도가 수류(首留), 수류가 욱보(郁甫), 욱보가 구도(仇道)를 낳고, 구도는 미추를 낳았다고 함으로써, 알지를 시조로 하는 경주김씨의 세보(世譜)를 소개하고 있다. 알지의 의미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분분하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알지라는 말은 어린아이, 즉 아기를 부를 때 쓰는 말이라고 하였으나 이는 후대에 부친 기록이므로 당대에도 그렇게 쓰였는지는 알 수는 없다.
 
또한 신라의[[신라]]의 시조왕인 [[박혁거세]] 설화에서 혁거세거서간(居西干)이 알에서 나와 처음 입을 열 적에 스스로 알지거서간이라 했다는 기록도 있는데, 이로써 알지는 곡물 또는 곡물에 들어있는 신령(神靈)을 나타내는 말이고 특정의 인명이 아닌 농업의 신 또는 그 대리자로서의 기능을 가지는 신라 초기 왕을 표현하는 것으로 보기도 하고 알지의 알은 금(金)을 나타내는 말이고 지는 존장자(尊長者)에 붙이는 존칭어이므로 알지는 김씨 부족의 족장을 뜻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 기록은 김씨 부족의 시조 출현을 나타내주는 것으로, 그가 석씨 시조인 탈해왕에 의해 발견되어 양육되었다는 것은 신라 왕위계승에서 김씨의 등장과 독점이 가장 늦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ref>김부식, 《[[삼국사기]]》, 1145년</ref> 《[[삼국유사]]》에도 거의 같은 전설이 기록되어 있으며, [[탈해왕]]이 김알지를 태자로 책봉하였으나 후에 [[파사 이사금]]에게 양보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