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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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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비니즘(Chauvinism)이라는 단어 자체는 사실 「외국 혐오」와 동시에 자국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용어로서 「○○지상주의」, 「○○우월주의」에 가까운 용어인데, 예를 들어 남성우월주의를 영어권에서 「메일 쇼비니즘(male chauvinism)」이라 부르는 것이 그 예로서, [[나폴레옹 1세|나폴레옹]] 휘하의 병사로 알려진 [[니콜라 쇼뱅]](Nicholas Chauvin)이 제정 몰락 후의 나폴레옹 1세와 그의 전쟁을 찬양한 데서 유래한다. 그는 1798년의 혁명전쟁과 [[나폴레옹 전쟁]]에 참전하였으며 열일곱 번이나 부상을 당하였다. 그는 혁명 프랑스에서 [[보나파르티즘]]의 인기가 시들었을 때에도 여전히 열열한 나폴레옹의 지지자였으며 그의 옷깃에 나폴레옹의 상징인 제비꽃을 꽂고 다녔다. 많은 작가와 역사가들이 쇼뱅의 영웅담을 퍼트리면서 사람들은 쇼뱅을 실제 인물이라기보다는 전설적인 존재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작가들의 창작에 의해 쇼뱅은 [[워털루 전투]]에 나폴레옹의 친위대 일원으로 참전한 것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워털루 전투가 있었을 당시 쇼뱅은 이미 노인이었으므로 실제 참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쇼뱅은 적군에게 포위된 마지막 친위부대의 일원으로서 적에게 끝까지 대항하였으며 「친위대는 죽을 뿐 항복하지 않는다」라고 외쳤다는 통념이 사회에 퍼졌다.
 
많은 작가와 역사가들이 쇼뱅의 영웅담을 퍼트리면서 사람들은 쇼뱅을 실제 인물이라기보다는 전설적인 존재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작가들의 창작에 의해 쇼뱅은 [[워털루 전투]]에 나폴레옹의 친위대 일원으로 참전한 것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워털루 전투가 있었을 당시 쇼뱅은 이미 노인이었으므로 실제 참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쇼뱅은 적군에게 포위된 마지막 친위부대의 일원으로서 적에게 끝까지 대항하였으며 "친위대는 죽을 뿐 항복하지 않는다."라고 외쳤다는 통념이 사회에 퍼졌다.
 
이로 인해 맹목적인 [[국민주의]]에 대해 쇼비니즘이란 표현이 사용되기 시작하였으며, 이후 국가 뿐만 아니라 자신이 속한 그룹에 대한 맹목적인 광신에 대해서도 쇼비니즘이란 말이 쓰이게 되었다. 쇼비니즘이 [[풍자]]적인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삼색모표(三色帽標) La Cocarde Tricolore"라는 [[희곡]]에서 쇼핑을 풍자한 이후이다.
 
=== 유의어 ===
쇼비니즘 즉 배외주의와 관련된 단어로서 제노포비아(xenophobia)가 있는데 「포비아」는 외국 뿐 아니라 외래 인물, 풍습을 혐오 · 배척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서 전근대의 「양이(攘夷)」에 가까운 의미이다. 일반적으로 「쇼비니즘」이라고 할 경우 이 제노포비아가 동의어로 충당한다. 「징고이즘(jingoism)」은 호전적인 배외 · 애국주의를 가리키는 말로 전쟁을 불사하는 자세를 강조한다. 다만 어떤 용어에 해당하는 현상이든 [[불황기]]에 강하게 나타난다는 공통적인 경향이 있지만, [[호황기]]에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 국민주의적 쇼비니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