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롤라모 카르다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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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과 유년기 ==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친구였고, 수학적 재능이 있던 변호사의 사생아로 태어난다. 카르다노의 자서전엔 그의 어머니가 그를 사산시키려 했다고 쓰여 있다. 그의 어머니는 그 외에 3명의 자식을 전염병으로 잃고, 그를 낳은 직후 [[밀라노]]에서 [[파비아]]로 이주했다. [[1520년]] [[파비아 대학]]에 들어가 의학을 공부하고, 후에 [[파도바]]로 학교를 옮겨 약학을 공부한다. 그는 성격이 특이하고 배타적이어서 친구가 거의 없었고, 졸업 후 직업을 찾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는다.당시그는 의학을전공해 의학으로 학위를 받았다. 결혼후 그는수학교사가 돼 수학과 물리학을 연구하기도 하고, 시골에서 의사생활을 하기도 했으며 1544년에는 밀라노 대학의 기하학 교수가 됐다.
 
그러나, 결국엔 그는 명망 있는 의사가 되고, 그의 소견은 재판장에서 신뢰를 얻는다. 그는 발진 티프스(typhus fever)를 처음 발견한 의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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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는 명성이 높아지면서'최고의 불운아'라는 별명도 함께 얻었다. 그의 인간성에 대한 평가는 좋지 않았다. 그는 평소에도 도박을 즐기는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였다고한다.
 
그는 언제나 돈에 쪼들려 사는 것으로 유명했다. 겨우 [[체스]]나 도박을 통해 파산을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단순한 도박사에서 머물지 않고, 1563년 쓰인 카르다노의 '기회의 게임에 관하여'는 확률론 연구의 처음시도였다. 도박에 관심이 많았던 카르다노는 게임에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다. 이런 과정에서 확률이 만들어졌다.
 
== 말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