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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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박헌영]]과 더불어 [[한국 전쟁]]의 최고 주범이다.<ref>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스탈린]], [[마오쩌둥]]에게 [[한국 전쟁]] 승인을 요청한 글에는 항상 두 사람의 서명이 들어가 있었다.</ref> 또한 김일성은 인권을 말살하는 [[스탈린주의]]를 엄격하게 고수했고, 황장엽의 인간중심 철학에 기초해 제시된 [[주체사상]]을 통치이데올로기화 하면서 독재이데올로기로 변질시켰다. .<ref>http://news.donga.com/3/all/20101118/32678104/1</ref> 여기에 더해, 정적 탄압과 독재에 대한 비판도 존재한다. [[한국 전쟁]] 이후 권력 강화 및 집권을 위해 연안파, 조선 국내파, 중국파를 비롯한 다수의 [[공산주의]], [[사회주의]]자들을 대량숙청하는 등 정치탄압을 가하였다.
 
==== 정적 탄압 및 일당독재화 ====
또한 경제적으로 공업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농산물의 값이 폭등하고, 계단식 논밭을 무리하게 개간하여 산림을 파괴시켜 그로 인해 식량생산의 자급률이 떨어지는 등 농업의 쇠퇴를 야기했다. 정치적으로는 자신의 아들인 [[김정일]]을 후계자로 삼아 세습체제를 구축한 것이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김일성은 최초에는 명망높은 공산주의자인 [[최용건]]을 앞세워서 독재를 실시했으며 이 과정에서 한국 전쟁에 대한 패전의 책임을 물어 연안파, 조선 국내파, 중국파를 비롯한 다수의 [[공산주의]], [[사회주의]]자들을 대량숙청했다. 또한 [[정치지도원]]을 적극 활용하여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감시했으며 공산주의와는 동떨어진 세습을 하게 되었다.
 
==== 경제 파탄 ====
또한김일성은 경제적으로 공업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농산물의 값이 폭등하고, 계단식 논밭을 무리하게 개간하여 산림을 파괴시켜 그로 인해 식량생산의 자급률이 떨어지는 등 농업의 쇠퇴를 야기했다. 정치적으로는 자신의 아들인 [[김정일]]을 후계자로 삼아 세습체제를 구축한 것이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게다가 경제개발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고 오직 자신의 우상화에만 전력투구했기 때문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경제는 1970년대 후반부터 급격히 기울기 시작하였으며 2000년대 이후에는 거의 국가파탄 지경에 이르렀다.
 
또한 1980년대에는 국채를 대량 발행하고 외국에 엄청난 빚을 졌는데 이 때문에 북한의 경제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게다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이 부채를 갚을 티끌만큼의 노력도 하고 있지 않다. 이 때문에 통일이 되면 대한민국이 이 부채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 다음은 북한이 각국에 진 부채이다.
{|class="wikitable sortable"
|-
!align="left"|국가
!align="left"|액수(단위:달러)
|-
|align="left"|중국
| style="text-align:center;"|69억 8천만
|-
|align="left"|러시아
| style="text-align:center;"|11억
|-
|align="left"|일본
| style="text-align:center;"|4억
|-
|align="left"|스웨덴
| style="text-align:center;"|3억 3천만
|-
|align="left"|이란
| style="text-align:center;"|3억
|-
|align="left"|독일
| style="text-align:center;"|3억
|-
|align="left"|프랑스
| style="text-align:center;"|2억 8천만
|-
|align="left"|태국
| style="text-align:center;"|2억 6천만
|-
|align="left"|오스트리아
| style="text-align:center;"|2억 1천만
|-
|align="left"|시리아
| style="text-align:center;"|1억 4천만
|-
|align="left"|스위스
| style="text-align:center;"|1억
|-
|align="left"|대만
| style="text-align:center;"|8천 6백만
|}
 
==== 친일파 중용 ====
조선민주주의공화국에서 김일성은 독립투사로 명성이 자자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김일성은 단지 마적단일 뿐이고 보천보전투 역시 그렇게 큰 규모의 전투는 아니다. 오히려 김일성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성립하면서 친일파들을 중용했다. 김일성의 동생 [[김영주]]는 독립운동가를 색출하던 일제의 헌병 보조원 출신이였으며 조일명 문화선전성 부상은 친일 사상교양단체였던 '대화숙' 출신으로 학도병 지원 유세를 주도했으며 군사분야를 담당한 김정제 보위성 부상은 양주군수를 지내는 동안 일제에 협력했다. 군부도 마찬가지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초대 공군사령관 이활과 인민군 9사단장 허민국, 인민군 기술부사단장 강치우 등은 나고야 항공학교 출신이다. 나고야 항공학교는 가미가제 폭격요원을 양성하는 학교였다.<ref>[http://imnews.imbc.com/replay/nwdesk/article/3326454_5780.html 北 김일성 초대내각 '친일파' 중용…건국 주역으로, 2013년 8월 15일 MBC뉴스]</ref>
 
이렇게 김일성은 친일파 위주로 자신의 내각을 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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