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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용 ==
이야기는 [[184년]](후한 영제 중평(中平) 원년)으로부터 [[280년]](진 무제 태강(泰康) 원년)에 이르기까지의 이른바 [[삼국 시대 (중국)|삼국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삼국지 연의는 기본적으로 [[유비]]가 주인공'''이며, 모든 에피소드는 [[유비]]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당시는, 중국 인구사에 따르면 [[한나라]] 중기 5600만명이었던 인구가 한나라 말 극심한 혼란기에 3000만명으로 줄었으며, 삼국지 시대에는 1600만명으로 인구가 급감한, 전란으로 인한 참담한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ref>(중국어 위키피디아 '중국인구사' 참조) [http://zh.wikipedia.org/w/index.php?title=%E4%B8%AD%E5%9B%BD%E4%BA%BA%E5%8F%A3%E5%8F%B2&variant=zh-hk]</ref>
 
* [[황건적의 난]]
*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
 
=== 가공의 인물 ===
삼국지연의는 역사 소설(통속연의란 제목 자체가 이런 뜻을 담고 있음)로서 역사에는 없는 가공의 설정들을 많이 등장시켰다. 그 예로, 소설의 초반부에서 등장하는 유비, 관우, 장비 세 사람의 결의형제(도원결의)는 유비, 관우, 장비가 매우 가까운 관계에 있었다는 기록을 바탕으로 한 창작이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실제 삼국지에서 등장하지 않는 인물들을 나관중의 창작에 의해 만들어서 등장시킨 가공의 인물들이 존재한다. 나관중은 극의 재미를 더하기 위해 이러한 가공의 인물들을 삼국지에 추가시켰다. 따라서 이 인물들은 정사 [[삼국지]]에는 등장하지 않으며 실제로도 존재하지 않는 가공의 인물들이다.
 
* [[관색]] : 관우의 막내아들.
* [[하후덕]] : [[하후상]]의 형.
* [[하후존]] : 관우를 쓰러뜨릴 수 있다고 자부했으나 실제로 싸웠을 때는 관우에게 사살당했다.
 
=== 실존인물이지만 연의에는 등장하지 않는 인물 ===
하지만 촉한의 구성원의 어두운 부분을 들추는 역할을 하는 인물이거나 별 비중이 없는 인물들은 삼국지연의에 임의로 등장시키지 않았다.
* [[염행]] : [[마초]]를 창자루로 폭행해서 의식불명상태로 만들어 놓았다. 마초는 염행에게 찍소리도 못했다. 마초의 어두운 부분을 들춘 인물이기 때문에 연의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 [[풍칙]] : 오나라의 졸병으로 [[황조]]를 사살했다. 원래 사서에 병졸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으나 황조에 대한 손씨가문의 원한이 사무친 덕에 그 이름이 기록되었다. 신분이 병졸이라는 이유로 연의에서는 등장하지 않는다.
* [[희지재]] : [[순욱]]의 천거를 받아 조조를 섬겼지만 얼마 못가 요절하는 바람에 순욱이 [[곽가]]를 천거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너무 일찍 죽어서 연의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 연표 ==
 
'''[[159년]] - [[환제]]가 [[양기]]를 모살'''
* [[양기]]는 당시 세력을 잡고 있었던 대장군이었다. [[양기]]와 그 일족이 돈을 받고 벼슬을 파는 등의파는등의 횡포가 너무나 심하여 가까이에 있던 환관들의 힘을 빌려 [[양기]]를 주살하는데는 성공했으나 이는 후일 '[[십상시의 난]]'을 불러오게 된다.
 
'''[[160년]] - [[관우]] 출생'''
 
'''[[161년]] - [[유비]] 출생'''
* [[삼국지]]의 주인공들 중 한 명인 [[유비]]의 출생. 후한 제3대 황제인 경제의 자손을 칭하였으나 [[유비]]의 할아버지대 부터 탁군에서 어렵게 살았다는 것을 볼때 황족이기는 했어도 촌수가 너무 멀어서 기득권층에는 속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경제는 그 후손이 워낙 많아 이미 그때 당시에도 진위여부를 가리기는 어려운 편이었다. 실제로도 촌수상으로는 [[유엽]]이 유비보다 더 [[유굉]]에게 가까웠다고 한다.
 
'''[[165년]] - [[장비]] 출생'''
* 민간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호걸 [[장비]]의 출생. 본시 [[삼국지]]가 기전체 소설로 정형화 되기 전, 송·원대의 [[삼국지]]를 주제로 한 잡극에서 주인공은 항상 [[장비]]가 맡았을 정도이다. [[유비]]와는 동향으로,동향이지만 조상들의 영지인 '연'을 내세우는 것을 좋아해서 소설상에서는 '연인 장비'라고 자칭하는 장면이 많다. 연의와는 다르게 정사에서의 장비는 문무를 겸비했다.
 
'''[[168년]] - [[조인]] 출생''','''[[환제]] 사망'''
 
'''[[190년]] - [[반동탁 연합군]] 결성. 한 왕조, [[동탁]]에 의해 [[낙양]]에서 [[장안]]으로 천도'''
* [[황건의 난]] 당시 서량에서 세력을 규합하고 있었던 [[동탁]]이 [[십상시의 난]]으로 인해 혼란한 황도에 쳐들어와 권력을 잡고, 형주자사 [[정원]]을 살해한 다음 스스로 상국의 자리에 앉는다. 이때 [[동탁]]이 끌고온 양주군사들의 횡포와 [[동탁]]의 농권으로 인하여 백성들이 또다시 도탄에 빠지자 [[원소]]를 필두로 한 18로 군벌들이 대항하여 [[반동탁 연합군]]을 결성하여 대항하지만, 종국은 제후들끼리의 내분으로 어이없이 와해되고 만다와해되고만다.
 
'''[[192년]] - 연환지계. [[여포]], [[동탁]]을 [[살해]]'''
* 사도 [[왕윤동탁]]의 시녀와 은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여포]]는 이를 [[동탁]]에게 사이에들킬까봐 매우 두려워하였고, [[초선동탁]] 끼워넣어[[동탁]]대로 기분이 좋지 않으면 [[여포]]에게 화극을 던지는 등의 행패를 부렸다. 이에 서서히 벌어지고 있었던 두사람의 사이를 사도 [[왕윤]]이 이간질함으로써 [[여포]]는 [[동탁]]을 황궁에서 주살했다주살하고 [[여포]]는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게 된다.
 
'''[[200년]] - [[관도 대전]]'''
* [[조조]]와 [[원소]]. 양웅이 맞붙게 된 [[삼국지]] 최초의 대규모 전투. [[조조]]는 병력과 사기 양면에서 열세였으나 기적적인[[곽가]]의 승리를헌신적인 거두었다노력으로 [[원소]]를 창정에서 대파한다. 원소는[[원소]]는 도주하던 도중 죽어버리고 후계자 선정에서 범한 실책으로 인하여 원씨 일족은 분열, 결국 하북도 [[조조]]의 수중에 들어가게 된다.
 
'''[[202년]] - [[강유]] 출생'''
 
'''[[219년]] - [[유비]]의 한중왕 등극. [[관우]]의 사망'''
* 서촉 41주를 취한 뒤, [[조조]]와의 한중쟁탈전에서 위장 [[하후연]]을 쓰러뜨리는 등 선전한 [[유비]]는 마침내 신하 120여명의 주창으로 한중왕에 등극하고, 이에 발끈한 [[조조]]는 대군을 일으키려 하나 [[사마의]]의 만류로 [[오]]와 동맹을 맺는다. [[주유]]와 [[노숙]]의 뒤를 이은 명장 [[여몽]]은 형주를 수비하던 [[관우]]와 일진일퇴를 벌이면서 기습을 성공시키고, 마침내 맥성에서 [[관우]]와[[관평]]을 붙잡아 [[참수]]시킨다. 분노한 [[유비]]는 [[관우]]의 복수전을 벌이려 하지만 [[제갈량]]과 [[조운]]의 만류로 단념하고 정세를 살피는데 주력한다.
 
'''[[220년]] - [[조조]]의 사망. [[후한]]의 멸망. [[위나라]]의 성립'''
* 치세의 능신, 난세의 간웅이라 불렸던 [[조조]]도 다가오는 죽음을 피하지는 못하였다. 장무 3년 4월. 천하를 종횡하며 제후들의 중심에 있었던 [[조조]]는 끝내 사망하고, 장남인 [[조비]]가 유지를 이어 [[조조]]의 뒤를 잇는다. [[조비]]는 선양의 형식으로 [[후한]]의 마지막 황제 [[헌제]]에게서 제위를 찬탈하고 [[위 (삼국)|위]] 황제에 즉위, [[전한 고조|고제]]로부터 400년간 이어져 내려오던 한나라는 이렇게 막을 내리게 된다.
 
'''[[221년]] - [[촉한]] 성립''' - [[장비]] 사망
 
'''[[222년]] - [[이릉 전투]]
*승상 [[제갈량]]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75만의 대병력을 일으켜 [[관우]]의 복수전을 개시하는 [[유비]]. 그러나 합류하기로 되어있던 [[장비]]가 부하에게 암살당하고, [[장비]]를 암살한 [[장달]]과 [[범강]]이 [[장비]]의 목을 가지고 [[오나라]]로 도주하자 [[유비]]의 분노는 극에 달한다. [[관우]]와 [[장비]]의 아들인 [[관흥]]과 [[장포]]의 활약에 힘입어 초반 선전하는 [[유비]]군이었지만, [[여몽]]의 사후 뒤를 이은 백면서생 [[육손]]의 화계에 의해 이릉에서 궤멸적인 타격을 입고, [[유비]]는 [[백제성]]으로 패주한다. 이때, [[육손]]은 기세를 몰아, 영안을 함락시킨 후, [[촉한]]을 멸망시키려고 하나, [[제갈량]]의 계락으로, 우왕좌왕한다우왕자왕한다. 그러나, [[황승언]]의 도움으로 무사히 석병팔진을 빠져 나왔으며, 이 때를 노린 [[조비]]가 형주를 공격하나, 실패로 끝났다.
 
'''[[223년]] - [[유비]]의 사망. [[제갈량]]의 남만 정벌'''
 
'''[[229년]] - [[손권]]이 황제가 됨. [[오나라]]의 성립'''
* 북벌에 나선 [[제갈량]]이 이끄는 [[촉한|촉]]군과 조진이 이끄는 [[위]]군은 일진일퇴를 한 끝에 촉의[[촉한]]의 승리로 끝나지만, 국가적 존망의 위기를 감지한 위황제 [[조예]]는 [[사마의]]를 다시 불러들인다. [[제갈량]]과 [[사마의]]가 정면으로 대결하게 되자 양쪽이 혼란한 틈을 타서 [[손권]]도 대황제라 칭하고 연호를 황룡이라 하며 [[오나라]]를 세움으로서 완전한 삼국정립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234년]] - [[오장원 전투]]. [[제갈량]]의 사망'''
* [[유비]], [[관우]], [[장비]], [[조조]], [[손견]]도 역사의 무대에서 죽거나 쓰러지고 말았다. 그리고 남은 한 사람...234년, [[제갈량]]은 오장원으로 진출한다. 하지만 오랜 세월을 전장에서 보낸 그의 건강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고, 마지막 수단으로 하늘에 기도하여 수명을 늘리는 술법을 행하지만 이마저도 실패로 돌아간다. 그 이유는 마지막날, [[위연]]이 촛대를 쓰러트려, 목숨등이 꺼졌다. 이때 [[강유]]는 [[위연]]을 죽이겠다고, 하나, [[제갈량]]이 말렸고, [[강유]]에게 병법 24편을 전수해주고 죽는다. 그리고 얼마후 [[위연]]은 반란을 일으키지만, [[마대]]에게 죽고만다. 이로써 가을바람 부는 오장원에서 [[촉한]]을 지탱하던 거대한 대들보는 마침내 쓰러지고, [[사마의]]는 최후의 순간에 승리를 거두고 [[위]]로 돌아간다.
 
'''[[263년]] - [[촉한위의 멸망촉 정벌|촉나라 멸망]]'''
* 근 50여 년간에 걸쳐서 삼국으로 대립하고 있던 중국대륙에 서서히 변화가 일기 시작한다. [[위나라]]에서는 [[사마의]]가 쿠데타를 일으켜 병권을 모두 장악함으로써 사마씨 일족의 시대가 도래했고 [[촉한|촉]] 역시 [[제갈량]]의 사후 [[강유]] 혼자서 겨우 지탱해 나가던 상태였다. 촉한이 내부에서부터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것을 안 [[사마의]]의 아들 [[사마사]]와 [[사마소]]는 [[등애]]와 [[종회]] 두 장군을 보내어 촉을 토벌케하고, 일반적인 행군로를 벗어나 산악지대로 행군한 [[등애]]는 마침내 승리한다. 이로써 촉한은 2대 황제 유선을 끝으로 허무하게 무너지고, 한왕조 부흥의 꿈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265년]] - [[위나라]] 멸망. 진나라([[서진]])의 성립'''
* 역사는 되풀이된다. 일찍이 [[조비]]가 [[헌제]]에게 선양의 형식으로 제위를 물려받은 것처럼, [[위]]의 마지막 황제 [[조환]]도 [[사마의]]의 손자인 [[사마염]]에게 제위를 선양하고 물러나니, 이것이 바로 신왕조 [[서진|진나라]]의 탄생이었다출생이었다.
'''[[280년]] - [[진의 오 정벌|오나라 멸망]]. 삼국 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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