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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학자간에도 [[해명태자 설화]]에 나오듯 위같은 견해도 있다는 것은 사실이지요..그 대체적으로 [[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으므로 [[환단고기]]의 기록을 참조하여 년도를 집어넣었던 거구요..정확한 년도가 없어 참조하여 기술한 거고..정확한 사실을 기술한 것도 아니고 대체적의 견해라는 그렇다는 것인데 '''경고라니 님이 무슨 권한으로 그리 말하는 것'''이지요?..[[사용자:Lexus|진실탐구]] ([[사용자토론:Lexus|토론]]) 2013년 8월 19일 (월) 12:23 (KST)
 
{{인용문|“진한은 본래 연(燕)나라 사람들이 피난해 온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탁수(涿水)의 이름을 따서 거처하는 마을을 사탁(沙涿)이나 점탁(漸涿) 등으로 불렀다.” 신라인들의 방언에 탁(涿)을 읽을 때 도(道)라고 했다. 그래서 지금도 혹 사량(沙梁)이라고 쓰고, 량(粱)을 도(道)라고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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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조선이 기원전(B.C) 238년경에 멸망하면서 72국으로 흩어져 살았다는 《삼국유사》(三國遺事, 第一卷, 제1기이(第一紀異) 72국(七十二國), 조선의 유민들이 70여 국으로 나뉘다)의 기록과 후한서(後漢書)에 이르기를 서한(西漢)은 조선의 옛 지역에 처음에는 4군을 두었다가 뒤에는 2부를 두었는데, 법령이 점차 번거로워지면서 갈라져 78국으로 나뉘고 각각 1만 호씩이다라고 하였다는 기록에 의거 연나라에 살던 단군조선의 유민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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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말의 문장가이자 학자인 [[경주]] 사량부의 사람,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은 이렇게 말하였다고 《[[삼국유사]]》에 전하길 옛날 진한(辰韓)의 땅에는 6촌(六村)이 있었다고 전하였지요..위와같이 기록에도 없는 얘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사용자:Lexus|진실탐구]] ([[사용자토론:Lexus|토론]]) 2013년 8월 19일 (월) 12:34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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